조선시대의 수능 과거시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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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상승의 기회 조선시대의 수능

시험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든

처음 보든 두번째 보든

 

그렇기 때문에 평소보다 실력이 더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의외로 실전에 강해 평소보다 실력이 더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험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수능이겠죠

 

그간 공부했던 것을 한번에 평가받고

이것으로 원했던 대학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시험이고 인생에 있어 커다란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수능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3년입니다

수능은 그 해에 치뤄지지만 다음 해 대학 입학에 사용되기 때문에

이때 이름은 1994년도 수능이었습니다

 

수능 이전에도 시험을 통해 그동안의 노력을 평가했습니다

1981년에는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있었고

1968년에는 대학입학 예비고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수능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시험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험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대한민국 이전 국가인 조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보지만

이때는 대학 입학이 아니라 관직을 얻기 위해 시험을 봤습니다

 

이 시험은 과목에 따라 인재를 선발한다고 해서

科(과목 과) 擧(들 거)

과거라고 불렀습니다

 

과거시험이 처음 시작된 것은 중국의 수나라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고려의 4대왕인 광종때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인 통일신라 원성왕때 독서삼품과라는 시험이 있긴 했지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채용하는데 참고하는정도로만 사용됐기 때문에

 

본격적인 과거시험은 95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시험은 왕권을 강화하고

권력을 한곳으로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려시대의 과거시험은 크게 제술과, 명경과, 잡과로 구분됐습니다

 

製(지을 제) 述(펼 술)과는 문학적 재능을 보는 시험

明(밝을 명) 經(경서 경)과는 유교에 대한 이해도를 보는 시험

雜(섞일 잡)과는 기타 여러가지 능력을 보는 시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와 다르게 무관을 뽑는 무과는 치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16대 왕인 예종때 강예재를 설치하면서

무관을 뽑아 군사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133년 문치주의를 중요시하던 문신들에 의해

강예재는 폐지되었습니다

 

지금의 수능은 1년에 딱 한번만 실시됩니다

과거시험 역시 초반에는 한번만 실시 됐지만

이후에 여러가지 단계가 도입되면서

총 3번의 시험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향시, 감시, 예부시라고 합니다

 

과거시험은 원칙적으로 3년에 한번 치뤄지는 것이었지만

1년에 한번 치뤄지기도 했고 2년에 한번 치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날짜를 정해놓고 치루진 않았습니다

 

과거시험을 감독하던 감독관을 지공거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시험 감독 이외에도 시험을 채점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이 제법 큰 역할이었습니다

 

지공거가 관리하는 시험에서 합격한 수험생을 문생이라고 불렀는데

지공거와 문생 사이에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지공거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합격시키고 제자를 길렀습니다

자신이 합격시켰던 문생이 이후에 지공거가 되면

자신의 제자를 그 지공거가 합격시키고

지공거가 된 문생은 다시 제자를 기르고

문생은 지공거가 되고 그 제자를 또 합격시키는 부정부패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지공거 때문에 왕권이 약화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왕이 직접 지공거가 되어

과거시험을 관리하는 복시가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된 이후에는

과거 과거시험에 있었던 문제점을 하나 둘 고쳐나갔습니다

 

무관으 뽑기 위해 무과를 다시 개설하기도 했으며

1차 시험인 초시(향시)

2차 시험인 복시(회시)

3차 시험인 전시

총 3단계로 진행되는 과거삼층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전시는 왕이 직접 관리하는 시험으로

과거 지공거의 힘이 너무 커져 왕권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감독관을 여러명 두는 복수시관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는 고려시대와 다르게 지공거의 힘은 많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차 시험인 초시는 전국 8도에서 치뤄졌지만

2차 시험인 복시는 한양에서 치뤄졌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양에 몰렸지만

복시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문과 33명 무과 28명 뿐이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과거시험을 준비했고

그러다보니 경쟁률이 2000:1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시험은 천인을 제외한 양인 모두가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통해 신분상승을 노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죠

 

문과는 소과와 대과로 나뉘어지는데

소과는 200명을 뽑았고 대과는 33명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소과에 합격하기만 하더라도

양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제법 많은 평민들이 소과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소과에 합격하게 되면 관직을 얻는것이 아주 어렵거나

낮은 직책을 받게 되지만

병역을 면제시켜주는 특권이 주어져서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시험을 준비하거나 치루는데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에

평민들이 과거시험을 보는 것은 마냥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은 보통 5살때부터 준비했는데

외워야 하는 한자의 개수가 너무 많기도 하고

과거시험 자체가 어려워서 30대 중반은 되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평균적으로 30년 이상 공부를 해야 합격했던 것이죠

 

이때는 농경사회라 한명한명의 노동력이 아주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가족중 한명이 농사가 아닌 공부를 한다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라면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한양에 가야했는데

이때는 자동차나 대중교통이 없었기 때문에

한양까지 가는데 많은 돈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시험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간 들였던 돈을 또 들여야 했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고 시험에 도전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민들은 과거시험에 많이 도전했습니다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죠

 

평민들이 합격하는 비율도 제법 높았습니다

어쩔때는 합격률이 50%가 넘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낮은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 관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관직이 주어지더라도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출신 학교에 따라 승진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죠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번이 원칙이었지만 비정기적으로 특별 시험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시험에 한번 탈락한 사람들이 특별 시험을 노리기 위해

서울에 눌러사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험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처럼 절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나 시험을 봤던 사람이

예상 문제를 만들어 기출문제집을 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집을 초집이라고 불렀는데

수험생들이 유교 경서를 공부하지 않고

초집에만 너무 의지해 큰일이라는 기록이 있기도 합니다

 

학교 공부는 소홀히 하고 학원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이것을 축하하기 위해 현수막을 걸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역시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이것을 축하하기 위해 방방의식이라는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방방의식은 나라에서 직접 열어주는 경우도 있었으며

마을 단위로 축하파티를 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명의 아들이 과거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축하의 의미로 부모에게 벼슬을 내리고 재물을 주는

오자등과가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그당시에는 과거시험이 아니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도전했고

합격하기 위해 여러가지 부정행위를 사용했습니다

 

옆사람의 답안지를 베끼거나(고반)

의견을 나눠 답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고(설화)

시험장에 다른사람이 대신 들어오거나(입문유린)

이름을 바꿔 제출하기도 했고(절과)

서로 암호를 정해 정답을 말해주는 방법이나(음아)

밖에 있는 사람에게 답안지를 전달받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외장서입)

 

이런 행위는 기본적으로 감독관을 매수하고 진행됐기 때문에(혁제)

 

들켜도 그냥 넘어가기도 했으며

대놓고 부정행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커닝 페이퍼가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종이에 글을 써 돌돌말아 콧구멍 속에 숨겨 들어오거나(의영고)

붓 속에 숨겨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협서)

 

중국에서도 과거시험을 치룰 때 부정행위가 판을 쳤다고 합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독방에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속옷을 커닝 페이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협대)

 

지금은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부정행위가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나 봅니다

 

수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뤄지기 때문에

점심에 밥을 먹기 위해선 도시락을 챙겨가야 합니다

 

과거시험 역시 긴 시간동안 치뤄졌기 때문에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챙겨가야 했는데

주로 닭고기와 과일을 많이 싸갔다고 합니다

 

과거시험은 외부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비라도 오게 되면 시험이 중단되었는데

이때는 비가 그칠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변이나 대변을 보기 위해선

개인 요강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능은 정답이 정해져있는 객관식이나 주관식으로 출제되지만

과거시험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는 논술 형태였습니다

 

조선의 과거시험 문제를 몇가지 소개해보겠습니다

 

태종 - 올바른 신하를 얻기 위한 방법은?

세종 - 효율적인 인재 양성 방법은?

성종 - 흉년 대비책은 무엇인가

연산군 - 오랑캐 제어 방법은?

 

이런 것처럼 현실적인 상황을 묻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조 - 최신 유행하는 음악에 관하여 논하라

중종 - 술의 폐해를 논하라

광해군 -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것처럼 감성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과거시험은 신분에 상관없이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유교 이외에 다른 학문은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져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그 사람의 능력은 판단할 수 있지만

인성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악인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관의 경우 이론은 잘 알지만

실전에서 학문을 응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시험이 정말 유능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수단인가? 하는 의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토익 점수는 높지만 외국인과 대화는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죠

 

시간이 흘러 근대화의 바람이 불자

조선에서도 뒤늦게 유교 이외에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실용적인 과학과 전문 지식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94년 갑오개혁때 과거시험은 폐지되었고

새로운 방법으로 관리를 뽑는 선거조례나 전고국조례가 시행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인재를 선발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수능, 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등

과거시험과 비슷한 방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을 평가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단점이 있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과거시험처럼 노력만으로 성공을 보장한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이것이 가장 공정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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