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출신 이슬람 신자? 천재 간첩 무함마드 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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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자로 위장해 들어온 천재 간첩 이야기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로
북한은 우리나라에 끊임없이 간첩을 보내고 있습니다

간첩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이 속한 나라에 다른 나라 정보를 몰래 보내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철저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1984년 한 외국인은
논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 좋아서 눌러앉게 되었고

대학 교수로 일을 하면서
방송에도 출연하고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외국인은
북한에서 보낸 간첩이었습니다

 

 

필리핀 아버지와 레바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46년생인 이 아이는

7살 때 레바논으로 건너가 그쪽에서 생활했습니다

 

1984년 말레이시아의 한 대학에 있던 중

논문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고

같은 해 9월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논문에 관한 자료를 얻은 뒤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한국이 좋아서 계속 살게 되었습니다

 

1990년에는 단국대학교 교수로 초빙 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의 이름은

무함마드 깐수입니다

 

깐수는 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랍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어, 필리핀어

총 12가지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하나의 언어만 잘 하는 것도 정말 힘든일인데

12가지 언어를 하다니 참 대단하죠

 

과거에는 한국에서 중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깐수는 중동쪽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아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금요일마다 기도를 드리는 이슬람 신자로

한국에서는 몇 안되는 이슬람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논문에 관해 한국으로 들어온 덕분에

한국은 큰 인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능력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는 42살의 나이에 26살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도 아주 좋았습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했고 그의 이웃들은 깐수를 자상한 간디 교수라고 불렀습니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부터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고

신문에 사설을 쓰거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잠을 자는동안 잠꼬대도 아랍어로 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한국에 큰 도움을 주는 외국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랬던 깐수는 1996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팩스를 보내던 중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정원)에 의해 체포당하게 됩니다

 

깐수가 한국에서 했던 행동들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1946년생도 아니었고 필리핀 사람도 아니었고

이슬람 신자도 아니었고 깐수라는 이름의 사람도 아니었고

심지어 미혼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1934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북한으로 귀화한

정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간첩이었던 것이죠

 

정수일은 카이로대학교 아랍어문학과 출신

모로코 중공 대사관 2등 서시관 출신의 정수일은

 

북한에서 아랍어를 가르쳤으며

김일성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고 하비다

 

이국적인 외모와 뛰어난 능력 덕분에

1974년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게 되었고

1979년 레바논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레바논 국적으로는 활동이 힘들다고 판단해

 

튀니지, 호주,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거치다

1983년 필리핀으로 이동한 뒤 국적을 취득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정수일은 조선족이었고 북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지만

이것을 속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그는 북한에 두고온 아내와 세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1984년 집을 구하려고 복덕방에서 이야기 하던중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본 복덕방 주인이 신고를 했지만

국내 이슬람 지도자들에 의해 잡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북한에 여러가지 자료를 넘긴 죄로

재판때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그가 넘겨준 자료가 북한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없었고

간첩활동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자료였기 때문에

 

12년형을 선고받은 뒤

2000년 광복절특사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정수일은 체포 당시에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했지만

완전히 들켰다고 판단된 이후부터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학문적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안타까워했고

자신을 잊어달라는 편지를 보냈음에도 끊임없이 면회를 오는 아내에게 감동받아

더이상 간첩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출소 이후 정수일은 간첩에 관련된 일은 하지 않고 있으며

2003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니다

 

분명 정수일은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언제나 비판을 받겠지만

 

중동 국가 관계에 많은 도움을 준 점

국내에 몇 안되는 이슬람, 아랍 전문가라는 점

여러가지 역사 관련된 서적을 번역하는 점 등

그가 이뤄낸 여러가지 학문적 성과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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