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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먹어 라는 말은 왜 욕으로 쓰이는 것일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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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먹어라는 말은 왜 욕이 됐을까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말도 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좋지 않은 말도 많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비속어가 성에 관련된 단어이긴 하지만

엿 먹어라 처럼 음식에 관련된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엿이라는 것은 꽤 맛있는 간식이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것인데

엿 먹어라 라는 말은 왜 비속어가 된 것일까요?

 

https://youtu.be/1sSih5ND6hk

대부분의 비속어가 그런 것처럼

엿 먹어라 역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이것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64년 서울 중학교 입시 시험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중학교에 들어갈 때 별다른 시험을 보지 않지만

과거에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처럼

중학교에 들어갈 때도 입시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1964년 12월 7일 65학년도 서울 전기 중학 입시 시험

자연 과목 18번 문제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엿기름 대신 넣어도 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르는 문제였는데

이때 보기가 1. 디아스타아제, 2. 꿀, 3. 녹말, 4. 무즙이었습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이 문제의 정답을 1번이라고 발표했지만

4번을 선택한 학생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무즙에는 디아스타아제 성분이 있었기 때문에

엿기름 대신 무즙을 넣어도 엿을 만들 수 있어서 큰 논란이 됐습니다

 

그 당시 교육감이었던 김원규는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온다면 정답으로 인정해주겠다고 조금 가볍게 이야기 했는데

이 말을 듣고 화가난 학부모들이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교육위원회에 와서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은 이게 무즙으로 만든 엿이다

엿이나 먹어라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전해져 내려와 엿 먹어라 라는 말이 비속어가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엿 먹어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1954년 8월 2일 경향신문 김화진의 칼럼에 따르면

엿 먹어 라는 말은 조선시대 때부터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 당시 강원도에 살던 사람들이 군복무를 위해 한양에 오게 되었는데

군복무가 끝난 이후에 강원도로 돌아가지 않고

살던 집을 그대로 매매해 한양에 계속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집을 매매한 이후에 주변 아이들에게 엿을 줘서 증인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이후에 집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면

아이들이 와서 증언을 해주곤 했는데

이때 했던 말이 내가 몇 살 때 엿을 먹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이때 사용한 엿 먹어는 상대방이 하는 말에 대해

헛소리 하지 말라 라고 사용되었던 것이죠

 

이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엿이 성기를 가리키는 은어였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나 과거나 엿은 그 가치에 비해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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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탄피를 잃어버리면 왜 목숨걸고 찾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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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를 목숨걸고 찾는 이유

군대에 다녀왔다면 가장 좋았던 훈련과

가장 싫었던 훈련은 무엇인가요?

 

저는 신병교육대에서 했던 각개전투가 가장 재밌었던 것 같고

나머지 훈련은 다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군대라는 공간 자체가 싫죠

 

사격훈련의 경우 사격을 하는 그 순간은 재밌지만

사격장까지 가는 과정이나 PRI, 총기 수입 등등 여러가지 귀찮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격은 실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훈련보다 더 신경써야 합니다

 

 

사격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무엇인가요

PRI부터 한다고 말하는 간부님들의 소리?

명중률을 압박하는 중대장님?

고막을 찢는듯한 총성?

 

이런 것보다 역시 다급한 이등병의 목소리겠죠

 

탄피 하나가 없습니다..!

 

탄피를 잃어버리면 훈련은 중단되고

모든 병력은 탄피를 찾기 위해 투입됩니다

 

그리고 탄피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 수색 작업이 계속 되죠

 

딱 보기에 별로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하나 잃어버리면 잃어버린대로 넘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

왜이렇게 목숨걸고 찾는 것일까요?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잃어버린 탄피를 찾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탄피는 황동으로 만들어집니다

황동은 그렇게 비싸다고 볼수 없지만

단위가 늘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현재 대한민국 육군의 수는 46만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보통 사격을할 때 한사람당 10발씩 쏘니

모두가 한번씩 사격을 한다면 460만발을 쏘게 됩니다

 

탄피를 회수하지 않는다면 460만개의 탄피가 낭비되겠죠

게다가 한국의 군대는 징병제입니다

누군가 전역을 하게 되면 누군가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럼 탄피 역시 계속 낭비되겠죠

 

탄피를 다시 회수하는 이유는

사용된 탄피를 재활용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안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총기 소유에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총이나 총알을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위력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단 한발의 총알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목숨을 뺏는데 충분하죠

 

우리나라는 징병제이기 때문에

일정 나이가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군대에 가야합니다

 

마치 끌려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육군의 경우 18개월을 군인 신분으로 보내게 되는데

1년 6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내 시간이 낭비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민한 상태에서

군대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부조리와 악폐습을 경험하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원한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수도 있습니다

 

만약 탄피를 회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격훈련을 한 뒤 탄피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실탄을 하나 사용하지 않은채로 몰래 빼돌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경계근무에 나갔을 때

빼돌린 실탄을 이용해 복수를 하게되는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격훈련이 끝난 뒤

탄피를 회수하는 것입니다

 

탄피는 보잘것없는 작은 고철이지만

모든 실탄을 소비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수류탄 훈련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류탄은 터져버리기 때문에 훈련때 제공받은 수류탄을 실제로 던졌는지 빼돌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전핀을 회수하게 된다면 제공한 수류탄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죠

 

이렇게 탄피를 목숨걸고 찾는 이유는

탄피 하나가 목숨 하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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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전쟁을 했지만 그냥 발려버린 사건(호주 에뮤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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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랑 전쟁했는데 패배한 사건

지구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있지만

현재 지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함께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런데 우리는 발전을 원하고 더 넓은 땅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의 터전을 조금씩 조금씩 빼앗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우리의 터전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터전을 지키려고 하겠죠

 

이것은 동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라고 평가받는

제2차 세계 대전은 500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 발생했던 제1차 세계 대전은 2차 대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죠

 

호주는 1차 세계 대전때 뉴질랜드와 연합해 협상국 소속으로 참전했습니다

 

전쟁은 협상국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에 참여했던 호주 군인들은 호주로 돌아와 다시 평범한 일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이들에게 땅을 제공했고

이들은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대공황때문에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니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떤 농부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고

남아있는 농부들은 정부에게 지원금을 받아 밀을 재배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에뮤라는 동물이 등장하면서

호주 농부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그림은 호주의 국기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은 호주의 국장입니다

 

국장속 왼쪽에 있는 동물은 캥거루이고

오른쪽에 있는 동물이 바로 에뮤입니다

 

호주 하면 캥거루나 코알라같은 동물을 떠올리지만

에뮤 역시 호주를 대표하는 동물입니다

 

에뮤는 타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약간 다른 동물로

키는 2m정도 몸무게는 50kg, 달리는 속도는 시속 50km정도 된다고 합니다

 

인간중에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우사인 볼트의 순간 최고 시속이 42km라고 하니

얼마나 빠른지 상상할수도 없습니다

 

에뮤는 특이하게 초록색 알을 낳는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그리고 과일이나 곤충, 곡식을 즐겨먹습니다

 

호주 농부들은 정부의 권유에 밀을 키우게 되었고

곡식을 좋아하는 에뮤에게

호주 농부들이 키워놓은 밀은

아주 맛있게 차려진 밥상과도 같았습니다

 

이때 호주는 토끼들과 전쟁을 치루느라

토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농장에 울타리를 쳐놨는데

2m가 되는 에뮤에게 이런 울타리 따위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습니다

 

에뮤는 농부들이 가꿔놓은 밀을 맛있게 먹어치웠습니다

이때 농장을 습격한 에뮤는 한두마리가 아니라

2만마리정도 되는 거대한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에뮤가 밀을 조금 남기고 돌아갔다면

그 뒤에는 뚫린 울타리에 토끼들이 들어와

밀을 모조리 쓸어갔습니다

 

안그래도 대공황때문에 힘든데

에뮤까지 난리를 피우니

호주 농부들은 더이상 살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농부들은 처음에 마을에 있는 작은 경찰서나 소방서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2만마리나 되는 에뮤를 상대하기엔 힘이 부족했습니다

 

이후 농부들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조지 피어스를 찾아갑니다

이쯤 되니 군대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죠

 

호주 정부는 상황이 난감했습니다

에뮤는 호주의 국조인데 국조를 학살하게 된다면

분명 다른 나라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국민들이 죽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호주 정부는 국민들을 택했고

대대적인 에뮤 소탕 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호주 농부들은 1차 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 사용했던 기관총의 위력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기관총을 투입할 것을 제안했죠

 

조지 피어스는 기관총을 사용하는 대신

농부들이 군인들의 숙박과 음식을 책임져야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현역 군인들의 좋은 사격연습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정부가 좋은 대응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진 촬영사와 함께

기관총 2정 탄약 1만발을 들고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작전은 원래 1932년 10월 31일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11월 2일로 연기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작전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때 사용된 기관총은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1차 대전때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위력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2만마리의 에뮤가 있긴 하지만

인간에겐 총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빠르게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그렇게 첫날 기관총을 가져가 에뮤 무리에 다가가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에뮤를 많이 죽이지 못했습니다

 

에뮤는 몸에 비해 다리와 머리가 얇기 때문에

이곳을 맞히기 힘들어 몸을 맞혀야 했는데

몸은 깃털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덕분에 뚫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에뮤는 너무 빨라서 조준을 하는 것 따라잡는 것 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기관총을 사용한 것 자체가 작전 실패였는지도 모릅니다

 

기관총은 무겁기 때문에 빠른 에뮤를 따라잡는데 한계가 있었고

소리가 너무 요란해 한번 쏘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에뮤들이 모두 도망가버리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 4일 이들은 에뮤를 잡기 위해

이번에도 기관총을 들고 나갑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에뮤 사냥을 시작했지만

하필 총에 탄피가 끼는 바람에 모여있던 에뮤들이 모두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습니다

12마리의 에뮤를 잡는데 성공했으니까요

 

이쯤되니 이제는 하나의 단순한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에뮤는 계속 곡식을 먹어치웠고

농부들의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국방부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습니다

 

이제 누군가 하나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에뮤와 인간간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이것을 에뮤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을 하는동안 에뮤는 좀 더 발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에뮤중에서 가장 커다란 에뮤가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리더가 인간을 감시하는 동안

에뮤들은 분산 배치돼 피해를 최소화 했습니다

 

호주군은 빠른 에뮤를 잡기 위해

트럭에 기관총을 설치해 에뮤를 소탕할 계획을 세웠지만

 

한 에뮤가 트럭에 몸통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트럭이 고장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에뮤 리더에 의한 전술인지

하나의 에뮤가 생각한 것인지

그냥 우연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뮤는 호주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이었습니다

 

에뮤는 분대를 나눠 인간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분대가 공격을 받으면

하나의 분대는 곡식을 먹었고

 

그 분대가 공격을 받으면

다른 분대가 곡식을 먹었습니다

 

결국 국방부 장관은 11월 8일 철수를 명령하게 됩니다

 

에뮤와 전투에서 단 한차례도 승리하지 못한채 말이죠

 

언론은 이런 상황을 빠짐없이 보도했고

호주군은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누가봐도 이 전쟁은 에뮤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호주군은 에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만약 에뮤를 길들여 군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어느 육군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에뮤는 계속 곡식을 먹었고

농부들의 삶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결국 농부들은 다시 국방부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11월 12일 군대가 다시 출격했고

과거의 패배를 교훈삼아 다른 작전으로 에뮤를 소탕했습니다

 

이들은 12월 10일까지 총 1만발의 탄약을 소비해

1000마리의 에뮤를 잡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군대는 철수하게 되고

국방부 장관은 에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했지만

 

아직 1만 9000마리의 에뮤가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과 전쟁에서 승리한 에뮤에게

훈장을 줘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호주군은 에뮤를 소탕하지 못했고 농부들은 계속 고통받았습니다

 

1934년, 1943년, 1948년 농부들은 다시 국방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호주 농부들은 에뮤를 가축화 시키는데 성공했고

더 크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으로

모든 사건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물론 더 많은 군인들 더 많은 무기를 투입했다면

에무와 전쟁에서 쉽게 승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토끼와의 전쟁

그리고 여우나 낙타의 개체수를 줄이지 못했던 것을 보면

호주는 이번에도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들은 많은 군대를 투입해 에뮤 소탕에 실패하게 된다면

또다시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죠

 

이쯤되니 정말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호주는 인간이 살면 안되고

자연 그대로 동물들이 살 수 있도록 둬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에뮤 전쟁은

결코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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