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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상에서 박멸시킨 최초의 전염병 천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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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삭제시킨 최초의 전염병

인류는 언제나 질병과 싸워왔습니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질병때문일지도 모른다라는 말도 있죠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 아직까지는 질병을 이기고 인류는 살아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 폐렴

일명 코로나19 라고 불리는 바이러스가 유행입니다

 

나갈때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잘 씻는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과거에도 비슷한 전염병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말 끔찍했던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이 병은

잠복기간이 7일~17일정도 됩니다

 

처음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고열, 구토, 근육통, 두통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몸에 발진이 생겨 피부가 완전히 망가지게 되고

뇌에 손상을 입거나 실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병은 30%의 치사율을 보이기 때문에

사망자도 참 많았습니다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침에 의해 감염이 되거나

입었던 옷을 입거나 만졌던 물건을 만지는 것으로도 감염이 됐습니다

 

심지어 공기중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죠

 

20세기에만 3억~5억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병은

두창, 마마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바로 천연두입니다

 

기원전 1274년에 있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전쟁인

카데시 전투에서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천연두는 이때쯤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죠

 

천연두는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동아시아쪽으로 전파됐으며

십자군 전쟁으로 아랍쪽에 퍼졌고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아메리카에 퍼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찬란했던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멸망한 원인으로 이야기 되고 있기도 하고

 

조선 숙종의 왕비인 인경왕우, 스페인의 루이스 1세,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염성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한번 유행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었고

치사율이 30%나 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천연두에 걸렸다가 운좋게 회복이 된다고 하더라도

온몸에 상처가 남기 때문에

후유증이 평생동안 가는

그야말로 악마가 내린 저주같은 병이었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주요 사망원인이 천연두였으며

20세기에만 3억~5억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천연두에 의해 멸망할 것만 같았습니다

 

의학기술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 인도나 중국에서는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딱지를 잘게 부순뒤

가루를 건강한 사람의 콧구멍에 넣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천연두에 한번 걸리면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심하게 걸리는 것을 예방하고

지금 약하게 걸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즉 약한 바이러스를 일부러 집어 넣어

몸이 스스로 면역력을 만들게 하는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을 인두법이라고 부릅니다

 

아랍에서는 천연두 가루를 콧구멍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팔에 작은 상처를 내서 넣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터키의 한 의사는 이것을 책으로 써

영국에 배포했고

이것으로 인두법은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인두법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여주긴 했지만

완벽하진 못했습니다

 

예방접종을 받지 못해 천연두에 의해 죽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고

접종을 받았다 하더라도

애초에 면역력이 약했다면 병이 심해져 죽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영국의 한 의사는 우유를 짤 때 우두라는 병에 걸리면

이후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두는 사람, 소,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을 숙주로하는

천연두와 유전적으로 같지만 많이 약한 병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사는 블러썸이라는 소에게서 우유를 짜다

우두에걸린 사라 넴스를 만나게 됩니다

 

사라 넴스는 우두에 걸린 덕분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는 우두가 천연두를 예방해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의사는 사라 넴스에게 우두 바이러스를 얻어

자신의 정원사의 아들인 8살짜리 제임스 핍스라는 소년에게 접종했습니다

 

소년은 우두를 앓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치유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집어넣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천연두에 걸릴 경우

성인보다 더 높은 치사율을 보여주긴 하지만

 

다행스럽게 제임스 핍스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이것으로 우두를 미리 접종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의사는 이와 같은 실험을 다른사람에게도 해봤고

그 결과 우두 바이러스보다 더 안전한 백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드디어 인류가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죠

 

이렇게 우두를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을 우두법이라고 합니다

 

백신을 개발해낸 의사의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로

인류가 천연두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점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처음 사람들은 제너를 믿지 못했습니다

병을 병으로 이긴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짐승의 병을 사람에게 넣는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너의 방법대로 하면

사람이 소가 되어버린다는 말도 안되는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천연두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제너를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연두에 걸리는 것보다

제너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결국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연두를 예방할 목적으로

백신을 몸에 넣는 인두법과 우두법 같은 방법을

종두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약용과 박제가가 인두법을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하고 있다가

지석영에 의해 우두법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백신은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WHO를 중심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펼쳐나갔습니다

 

천연두는 인간 이외에 다른 동물은 걸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백신을 맞아 면역력이 생긴다면

더이상 숙주로 삼을 개체가 없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WHO는 시스템을 만들어 전염병이 발생하면

1주일 이내에 보고를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연두 유행이 시작되면

그 지역보다 훨씬 더 범위를 넓게 설정해

조금씩 조금씩 치료를 해나갔습니다

 

천연두가 시작되면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백신을 맞아야 했습니다

과거 천연두 백신을 맞았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식으로 천연두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리려고 했던 것이죠

 

1975년 10월 방글라데시의 라히마 바누가

마지막 천연두 자연감염자였습니다

 

이 아이를 끝으로 천연두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더이상 없었으며

1980년 세계 보건 기구(WHO)는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완전하게 박멸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천연두 박멸 이후 더이상 천연두 예방접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연구 목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아직 가지고 있으며

 

북한 등 몇몇의 국가는 생물학 무기를 목적으로 천연두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천연두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면

인류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예방접종도 하지 않고 있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천연두 백신에 대한 연구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 천연두가 남아있기 때문에

위험이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죠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질병입니다

앞으로 어떤 질병이 유행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연구를 통해 인류는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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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보다 참혹했던 사건 조선 경신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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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구 100만명이 삭제된 사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까요

먹기 위해 산다

살기 위해 먹는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먹기 위해 산다 쪽입니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도 너무나 많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다 먹을 때까지는 죽고싶지 않네요

 

저는 영생을 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모든 생물은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먹지 못하면 영양분이 생기지 못하고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이정도만 되도 다행인데 계속 먹지 못하면 굶주림에 죽게되는 경우도 있죠

 

https://www.youtube.com/watch?v=4c-HNx58cjs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습닏

집에서 빗소리를 듣고 시원한 날씨가 되는 것은 좋지만

습기가 너무 많아서 찝찝한 날이 되기도 하고

밖에 나가야 하는 경우 우산이 있어도 젖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지만

식물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곡식이나 과일을 먹지 못하게 되겠죠

 

채식을 못하면 육식을 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동물들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동물들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농사도 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을 흉년이라고 하며 

흉년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한 상황을 기근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비가 오지 않아도

저장해 놓은 식량도 많이 있고 인공 식량도 많이 있기 때문에

기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자연에만 의지해야했던 과거라면 어떨까요?

 

1670년대 조선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를 할 수 없었고

심각한 기근이 오면서 굶주림 때문에 100만명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경술년인 1670년에서 신해년인 1671년 사이에 발생했기 때문에

경술년과 신해년의 앞글자를 따서 경신 대기근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끝나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합니다

 

이때는 먹을 게 없어서 인육을 먹는 사건이 있기도 했지만

이들을 처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기근의 조짐은 1690년 음력 1월부터 보였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유성이 많이 떨어지고 운석이 떨어지는 곳도 있었는데

 

이들의 영향으로 우주 먼지가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먼지가 태양을 가려 낮이지만 어둡고 추운날이 계속 됐습니다

 

그리고 햇무리와 달무리가 매일같이 관측 됐는데

햇무리와 달무리는 원래 구름이 많으면 관측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구름이 많으면 비가 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햇무리와 달무리가 관측 된다면 다음날 비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발생된 햇무리와 달무리는 구름이 아닌

우주 먼지에 의해 발생된 것이었죠

 

그래서 비는 오지 않았고 추운날만 계속 됐습니다

 

전라도에서는 지진이 관측되기도 했으며

충청도와 평안도에서 시작된 전염병은 많은 사상자를 기록하더니

결국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죠

 

음력 3월이 되자 슬슬 모내기를 준비해야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모내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과 다르게 저장된 식량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농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이때 조선의 왕은 현종이었는데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해 기우제를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기우제는 총 8번을 지냈지만

기우제 동안에는 비는 내리지 않았고

눈이 내리거나 우박이 내려 농작물에 피해를 줬습니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기 때문에 농사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눈에 의해 어린 식물들이 얼어버릴 수 있으며

 

우박이 오면 식물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봄에 내리는 눈이나 우박은 농사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박이나 눈이 잠깐 내린 것이 아니라

음력 4월, 5월, 6월에도 내렸으니

 

1670년의 농사는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봐도 무방했죠

 

우박은 식물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사람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뭄으로 농사가 망해버린 상황에

메뚜기 떼와 참새 떼가 덮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곡식은 물론

나무의 도토리나 밤도 쓸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음력 5월 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비가 와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어제 내리던 비는 오늘도 내렸고 내일도 내렸고 내일 모레도 내일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계속 내려 가뭄 이후에는 홍수가 조선을 덮쳐버렸습니다

 

특히 호남지방의 홍수 피해가 컸는데

호남지방은 조선의 곡창지대로 식량이 많이 있는 곳중 하나였습니다

 

홍수로 인해 사람뿐만 아니라 소들도 많이 죽었는데

이때 하필 구제역도 터지면서 수만마리의 소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사에 도움을 주는 소들을 고맙게 생각해 도축을 금지 했었습니다

 

소고기를 먹는 것은 나라에서 금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먹을게 너무 없어서 소의 도축을 일시적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고기로 대기근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애초에 소고기를 자주 먹지 않던 사람들이라 갑자기 몸에 소고기가 들어와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미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탈이 나니 몸은 낫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구제역 때문에 소가 많이 병들었는데 그런 소를 먹게 되면서

위험한 상황이 계속 됐던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으로 죽어간 1670년

1671년에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죠

 

심지어 대기근의 영향은 궁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현종은 창덕궁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과 궁녀들에게도 전염병이 퍼지나

현종은 거처를 경덕궁으로 옮겼습니다

 

궁궐에도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자

많은 관리들이 궁을 탈출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현종은 사직서를 수리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사직서를 수리해줬다고 합니다

 

이때 영의정이었던 허적은 사직서를 14번이나 제출했지만

현종은 서인을 견제하기 위해 허적의 사직서만은 수리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종은 경덕궁에서 생활을 하다가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다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궁궐 밖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닏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고

 

집안에 음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도둑질을 해가거나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해쳐 옷을 훔쳐 입는 사건도 생겼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먹을게 너무 없어서

자신의 자식을 삶아 먹거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정부는 굶어 죽는 사람들의 비율을 조금 줄여보고자

진휼소를 마련해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흉년이었던 탓에

굶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진휼소의 쌀로는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휼소에서 밥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부부가 함께 밥을 기다리다가 남편이 죽었음에도

밥을 다 먹은 이후에 슬퍼했다는 사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 정부는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세금을 쌀로 걷고 땅이 적은 사람들의 세금을 조금이나마 감면 해주는

대동법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마을의 주민을 관리하기 위해

호패법이나 오가작통법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없었고

 

약 1000만명정도로 추정된느 조선의 인구 중

약 100만명정도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의 인구는 공식적으로 516만명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이것은 호적에 등록된 인구만 말하는 것으로

상당히 많은 머슴이나 노비는 제외된 숫자입니다

 

조선 인구가 500만인데 사망 인구가 100만이라면

조선 인구의 20%가 죽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조선 인구의 20%가 죽은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망 인구 역시 100만명이다 아니다 라는 말이 많지만

지방 관리들이 자신의 실적때문에 사망 인구를 축소해서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어

100만명 혹은 그 이상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신 대기근 이후 조선은 인구를 회복하나 했지만

을해년인 1695년에서 병자년인 1696년 사이에 대기근이 또 일어나

약 15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을해년과 병자년의 앞글자를 따 을병 대기근이라고 말합니다

 

경신 대기근과 을병 대기근의 피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임진왜란(1592~1598)보다 더 참혹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경신 대기근때 먹을게 너무 없어서

청나라에서 쌀을 수입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했고

과거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던 사건인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이 있기도 했습니다

 

또 1637년 2월 24일에는 오랑캐라고 부르던 나라에게

조선의 왕인 인조가 직접 항복을 하고 삼전도에 비석을 세우는

삼전도의 굴욕이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 쌀을 수입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이 있었죠

 

하지만 을병 대기근 때는 굶주림을 버티지 못하고

청나라에서 쌀을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경신 대기근이었지만

그나마 한양의 상황은 조금 나았습니다

 

여기서 조금 나았다는 것은 사망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비에 아주 조금 적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양은 왕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의 사람들은 지원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한양에는 진휼소나 구휼체제가 잘 운영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양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때는 지금처럼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는데

 

경신 대기근 이후로 또 대기근이 올까 두려워

많은 사람들이 한양으로 몰렸는데

한양(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 된 것이 이때부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신 대기근때는 얼어죽는 사람의 숫자도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이후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온돌이 보급화 되기도 했습니다

 

온돌은 만드는데도 유지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양반들도 일부의 방에만 사용했는데

 

때마침 경신 대기근 이후 값싼 온돌이 발명되면서

온돌을 보급화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온돌이 보급화 되면서 사람들이 나무 땔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산이 나무가 하나도 없는 민둥산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경신 대기근과 을병 대기근 이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나마 미 개척지인 만주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청나라와 조선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12년 청나라와 조선은 영토의 경계를 확실하게 정하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1670년에서 1671년에 일어났던 경신 대기근과

1696년에서 1695년에 일어났던 을병 대기근의 원인은

이상 기후 현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상 기후 현상은 13세기 초에서 17세기 말까지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관측 됐습니다

 

알프스의 빙하가 확장돼 목초지가 줄어들기도 했으며

폴란드는 대홍수를 겪었고

영국의 템스강이 얼어붙은 사건

중국의 감귤 농장이 망해버린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봄, 여름이 왔지만 이상하게 추운 현상이 계속 됐기 때문에

이 시기를 소빙하기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소빙하기는 태양의 활동이 감소해 흑점이 줄어들고

지구로 들어오는 열이 1도는 낮아졌기 때문에 생겼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1도만 높아져도 상당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지구의 온도가 1도만 낮아져도 상당히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소빙하기는 500년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있는데

예측에 의하면 2020년~2030년사이에 소빙하기가 또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자연에 의지해야만 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비축해둔 식량도 많고 비가 조금 오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참사는 모르겠지만 대기근의 참사만큼은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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