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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푸라기를 팔아 수십억 원을 벌었던 짚신 장수 이야기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일러스트를 이용해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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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를 팔아 수십억을 번 사람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길 꿈꿉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각자의 재능을 살려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출세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중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큰 가치가 없어보이는 지푸라기를 이용해서
수십억원을 번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위험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발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신발을 신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신발 종류가 생겨났고
신발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브랜드도 많이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짚신이 가장 대표적인 신발이었습니다

 


짚신은 주로 벼의 줄기인 볏짚을 이용해 만드는데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는 벼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에
볏짚은 주변에서 보기 아주 흔한 것이었고
만들기도 쉬워서 가격도 저렴한 신발이었습니다

물론 신분마다 짚신의 모양의 차이가 나긴 했지만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짚신을 신던 때였죠


하지만 당시에는 내구력을 올릴 수 있는 기술도 없었고
아무래도 지푸라기를 이용해 신발을 만들다 보니

쉽게 망가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짚신을 여러 켤레 준비해야 했습니다



과거 짚신은 신발의 용도 그 이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망가진 짚신에 손잡이를 달아
파리채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발에 밟히고 땅에 끌렸기 때문에 저항력이 생겼다고 믿어
병마를 쫓아내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대문에 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짚신을 만드는 것은 아주 쉬웠기 때문에
공부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땅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도
자본이 없어 장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기술이 없어 전문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짚신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넘쳐났기 때문에
짚신을 만들어 파는 것만으로도

꽤 쏠쏠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짚신을 만드는 행위를 짚신을 삼다라고 하는데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를 보면
토정 이지함이 구걸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짚신을 삼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하루에 열 켤레만 만들어 팔아도
양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몇 달 만에 삶이 넉넉해졌다는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짚신 장사를 하는 사람 중 송세흥이라는 사람은
세 살쯤 버려진 뒤 송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키워졌는데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짚신을 삼았다고 합니다

그는 후추를 눈에 발라 잠을 쫓으면서까지
짚신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속세를 떠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승려가 되어버렸고
절에서도 짚신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0년쯤 지나 결혼할 나이가 되자 절에서 나왔는데
이때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은 수천 냥 정도로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천 냥이 7000만 원 정도 된다고 하니
그의 재산은 수억 원 정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혼 이후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고
다시 돈을 모으기 위해
그는 아들과 함께 절로 들어가 또다시 짚신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10년쯤 지난 뒤
이번에는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됐을 때
절에서 나왔는데
이때는 밭을 사 부처님에게 드린 뒤 나왔다고 합니다



송세흥은 이제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고
아들과 함께 짚신을 삼았을 테니
그의 재산은 수십억 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는 절에서 나온 뒤로도 짚신을 계속 삼았으며
별다른 질병 없이 98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짚신을 팔아 부자가 된 송세흥의 삶은
1801년부터 유배생활을 하며
일상을 기록했던 심노숭의 책인 남천일록에 쓰여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는
물이 맑아 청강이라 불리는 강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과거 이곳에는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는데
매년 홍수가 나 떠내려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돌다리로 바꾸려고 했지만
마을을 위해 선뜻 돈을 내는 사람이 없어
몇 년째 같은 문제가 발생했죠

그런데 짚신을 팔아 재산을 모은 송세흥이 돈을 내
나무다리를 돌다리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는데
실제로 비석 뒷면에는 대시주(크게 베풂) 송세흥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짚신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조금 비싸긴 하지만
내구성이 좋은 고무신이 등장하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짚신 장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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