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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김은 왜 김이라고 불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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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왜 김이라고 할까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고
동맥경화, 고혈압, 골다공증
그리고 암을 예방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국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하나만 있어도 밥 한공기를 해치워버릴 수 있는 이 반찬은
바로 김입니다

김은 해조류의 한 종류로
살짝 구워서 양념장과 함께 싸먹어도 아주 맛있고
소금을 뿌려 구운 뒤 싸먹어도 아주 맛있고
다른 음식에 추가해 먹어도 아주 맛있고
그냥 먹어도 아주 맛있는 음식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김을 먹을 때
이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지만
김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있는 중이니 한번 생각해봅시다

김은 왜 김이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김은 전세계적으로 80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업적으로 생산되고 판매되는 김은 대부분
한국, 중국, 일본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의 김은 가장 높은 수출량을 보이고 있죠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김을 먹은 것 역시
기록상으로는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합니다

김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은 바다 바위에 붙어 자라게 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마치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해서
김을 해의라고 불렀습니다

일연 스님이 제작한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때 해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해의가
김을 뜻하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해의에 대한 기록
즉 김에 대한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24년에 만들어진 경상도지리지에 등장하기도 하며
1454년에 만들어진 세종실록지리지에
해안 지방의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며
명나라에 바치는 조공품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해의가 김으로 불렸는지
이것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지만
몇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1640년 조선의 왕이 인조일 때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해변에 표류해온 나뭇가지에 해의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것에 영감을 얻어 해의 양식을 처음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여익은 해의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고 하며
양식에 성공했을 때도 음식에 이름을 짓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 음식은 인조의 수라상에 올라가게 되었고
인조는 음식을 먹어본 뒤 이름을 물어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이름은 아직 없고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들은 인조는
그렇다면 이 음식을 이제부터 김이라고 불러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날부터 해의는 김이라는 음식으로 불리게 된 것이죠



또 김여익이 해의 양식에 성공하고 거래를 할 때
김씨 집안에서 만든 음식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리고 김여익의 양식법 때문에 김 양식이 보급화 되었으니

해의를 김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여익은 당시 전라남도 광양에서 김 양식을 시작했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광양에는 김시식지가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김여익에 대한 이런 기록은
무덤 앞에 세우는 돌인 묘비에 적혀 있다고 하지만
현재 묘비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사본만 남아 김시식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김에 대한 어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김씨 성을 가진 사람과 관련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만약 김씨 성이 아니라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양식을 했다고 전해져 내려왔다면
오늘날 김은 김이 아니라 조라고 불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즐겨 먹는 이 음식의 이름은
김밥이 아니라 조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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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은 왜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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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들은 왜 비가 와도 우산을 안쓸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면 시야도 좁아지고
양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산을 쓰지 않으면
쫄딱 젖어버리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우산을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죠

그런데 서양권에서는
특히 영국이라는 나라는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고 다니는 걸까요



우산은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우산은
1750년대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우산을 뜻하는 영어인 Umbrella는
그림자를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산은 비를 막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었습니다

그때는 신분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본인이 직접 우산을 들지 않았고
햇빛을 가려줄 누군가가 존재했었습니다

쉽게 말해 과거의 우산은
하인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었던 것이죠



고대 중국에서도 왕족들이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우산을 사용했는데
이때도 역시 하인이 우산을 대신 들어줬습니다

이런 우산은 고대 그리스, 로마로 전해졌는데
무역을 할 수 있는 수단이 그리 발달되지 않았던 때라
그리고 귀족, 왕족들이 사용하던 물건이라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덕분에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부유한 여자들이 자신의 부를 나타내기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차별하고 무시하던
그 당시 남자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거나
아니면 그냥 비를 맞았습니다

하인들, 여자들이나 들고 다니는 물건을
우월한 존재인 남자들이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시간이 흘러 우산은 유럽 곳곳에 퍼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우산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하게 우산을 써야 할 때는 자신이 직접 들지 않고
하인을 시켜 우산을 들게 했습니다

현대적 우산을 만든 조나스 한웨이는
우산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한웨이를 조롱했죠

 


특히 마차를 모는 사람들이 한웨이를 많이 공격했는데
비가 오면 비를 피하기 위해 마차를 이용하지만
우산이 보급화되면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나스 한웨이가 30년 동안 우산을 들고 다닌 덕분에
우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산을 쓰는 것은 천한 행동이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라는 인식이 많이 남아있고
이런 문화가 전해져 내려오면서
현대에 와서도 우산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이유 이외에도
날씨 때문에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국은 비가 자주 내리는 나라이긴 하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이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잠깐 비를 피하거나
애초에 방수가 되는 옷을 입는 것으로
우산을 대체합니다

그런 덕분에 방수가 되는 옷과 모자 쪽으로
많이 발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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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조각상에 있는 성기는 왜 모두 작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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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조각상에 있는 그것은 왜 다 작을까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는
수학, 과학, 철학 등 여러 가지 문명이 발전하던 때였습니다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그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뛰어난 예술 작품도 많이 만들어졌죠

문명이 많이 발전했다곤 하나
현대적인 기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조각상을 보면
디테일이나 비율 같은 것들이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 당시 예술가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런데 그때 만들어진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아니 굳이 자세히 보려고 보지 않아도
중심부에 있어서 눈에 잘 띄는 그것

남자 조각상에 있는 성기는
이상하게 아주 작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비율을 맞춰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었으면서
왜 이곳은 이렇게 작게 만든 것일까요

youtu.be/E-kvhR4Qyc0


기원전 450년에 만들어진 제우스의 조각상
기원전 350년에 만들어진 아폴론의 조각상
기원전 200년에 만들어진 라오콘 군상

그 당시 만들어진 남자의 조각상을 보면
하나같이 작은 성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율을 중요시하게 여기던 고대 그리스의 상황을 보면
조각상의 성기는 모순적인 표현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작은 성기가 각광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상적인 남성의 모습은
밝은 피부, 적은 말수, 넓은 어깨, 빛나는 가슴, 큰 엉덩이
그리고 작은 성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반면 큰 성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란하고 색욕에 찌들었으며 어리석은 사람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때는 과학과 철학이 많이 발달하던 시절이라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이 인기가 많았는데

조각상으로 만들어지는 사람 또는 만들어지는 신이
어리석음을 대표하는 큰 성기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우러러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혹시 실제로 큰 성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각에는 아주 작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성기를 이상적으로 생각한 데는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는 흑인은 물론 여자들까지 차별을 당하던 때였죠

백인 남성만이 그중에서도 그리스인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흑인의 검은 피부와 신체적 특징은
아름답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것
조롱의 대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커다란 성기를 가지고 있는 흑인은
어리석고 사람이 아닌 취급을 받았는데

그리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숭배하는 대상의 성기가 크다면
그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일부러 조각을 만들 때 성기를 더 작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사티로스는
장난과 술,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티로스의 조각을 보면
까만 피부에 발기된 성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큰 성기가
얼마나 부정적인 이미지였는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조각상 역시
이런 영향을 받아 성기가 작게 표현되었습니다

1500년대에 만들어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대표적인 예술 작품이죠

오늘날에는 큰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정적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여전히 조각상에 성기를 작게 만드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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