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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는 동서로 갈라져 있는데 왜 충청남도, 충청북도라고 부르는 걸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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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동도/서도가 맞는 거 아님?

 

우리나라는 크게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각각 남도와 북도로 나누어져 있죠

경기도는 남북으로 나누는 것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인데
바로 어제 경기북도의 이름이 평화누리특별자치도로 결정되었습니다

뭐 어쨌거나
그런데 지도를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전라남도와 북도, 경상남도와 북도는
위아래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남도와 북도인 것이 이해가 되는데

충청도는 좌우로 나누어져 있음에도
남도와 북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충청좌도와 우도나 청도동도와 서도가 되어야 할텐데
도대체 왜 충청남도와 북도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https://youtu.be/7j0pJ7cs4JA


도는 어떤 목적지로 가는 길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는 구분하기 쉽게 군사적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지만
이후에 행정적인 성격이 더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도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995년 고려 성종 때부터입니다

이때는 우리나라를 총 10개의 도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1012년 고려 현종이 10개의 도를
군사적 성격이 강한 두 개의 계와
행정적 성격이 강한 다섯 개의 도로 개편하게 됩니다

이것을 5도 양계라고 부르죠

 


조선에서는 우리나라를 총 8개의 도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조선 팔도라고 하는데

이러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가 두개로 나누어졌다가
합쳐졌다가 다시 나누어지기도 했습니다

경기도는 경기좌도와 우도로
충청도는 충청좌도와 우도로
전라도와 경상도 역시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좌도와 우도는 우리가 보기에
방향이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왕의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인데
왕이 성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으면 좌도 오른쪽에 있으면 우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도를 좌우로 나눈 이유는 넓은 땅을 반으로 나눠 구분하면
관리가 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좌도와 우도가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땅은 위아래로 길고 좌우로 짧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
좌우로 나누는 것보다 위아래로 나누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조선은 도를 좌우로 나누어서 관리했습니다

 


1894년에 들어서 근대화를 이유로
우리나라를 23개로 나누어 관리했는데
너무 과하게 나눠 오히려 관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1896년 13개로 통합해 관리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의 도를 좌도와 우도가 아니라
남도와 북도로 나누었습니다



남도와 북도로 나누어진 곳 중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는
지형 특성상 남도와 북도로 나누는 것이 관리하기 편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충청도는 위아래보다 좌우가 길기 때문에
남북으로 나누는 것보다 좌우로 나누는 것이 관리하기 편합니다

그래서 좌우로 나눴는데
충청도만 좌도와 우도로 부르자니

 


통일성이 떨어지고 전체를 관리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
명칭을 그냥 남도와 북도로 정했습니다
진짜 그냥 편의를 위해서 남도와 북도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쭉 유지되어 충청도는 좌우로 나누어져 있음에도
충청좌도나 우도, 충청동도나 서도가 아니라
충청남도, 충청북도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충청도는 조선에서 나누었던 경계와 현재의 경계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만약 통일성을 중요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충청남도는 충청우도라고
충청북도는 충청좌도라고 불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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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있다면 어디엔가 올드질랜드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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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있으면 올드질랜드도 있나?

 

올드 질랜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오세아니아에 있는 나라인 뉴질랜드
넓은 초원과 양떼들
반지의 제왕과 마오리족이 유명한 나라입니다

뉴질랜드는 말 그대로 뉴 질랜드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새로운 질랜드라는 뜻이죠

이렇게 새로운 질랜드가 있다면 오래된 질랜드
올드 질랜드도 어디엔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올드 질랜드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https://youtu.be/5QjudqwEG-g


네덜란드의 탐험가인 아벨 태즈먼은
1642년 네덜란드의 무역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부터
남태평양의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1642년 11월 태즈먼은 남태평양을 탐험하다
유럽인 최초로 외딴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태즈먼은 당시 동인도 회사의 총독이었던 앤서니 반 디멘의 이름을 따
이 섬의 이름을 Van Diemen's land라고 지었습니다

Van Diemen's land는 현재는 호주에 속해 있는 섬으로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처음 발견한 태즈먼의 이름을 따
태즈메이니아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태즈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동쪽으로 더 이동했습니다

1642년 12월 그는 또다른 섬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섬 역시 유럽인 최초로 발견한 것입니다

태즈먼은 이 섬이 남아메리카의 일부인 것으로 생각해
아르헨티나의 섬 이름인 스태튼 랜트(Staten Landt)에서 이름을 따
똑같이 스태튼 랜트라고 지었습니다



스태튼 랜트는 태즈먼이 유럽인 최초로 발견한 땅이지만
그보다 먼저 이 땅에 도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태즈먼 일행에 위협을 느낀 원주민은 태즈먼 일행을 공격했고
이러는 과정에서 선원 4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태즈먼은 그대로 네덜란드로 돌아왔고
새로운 섬에 대한 사실을 알렸는데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들이 스태튼 랜트는 남아메리카의 일부가 아니라
새로운 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스태튼 랜트가 아니라 새로운 이름을 짓게 되는데
이 섬이 네덜란드 남서쪽에 있는 질랜드라는 지역과 닮았다고 해서
뉴질랜드라고 지었습니다


즉 뉴질랜드는 실제로 새로운 질랜드라는 뜻이고
네덜란드의 질랜드가 바로 올드 질랜드인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질랜드와 뉴질랜드는 하나도 안닮았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이런식의 작명은 뉴질랜드가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의 뉴욕을 과거 네덜란드가 점령했을 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닮았다고 해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고

뉴암스테르담의 한 도시를 네덜란드의 하를렘과 닮았다고 해서
뉴하를렘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은 지금 할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태즈먼이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있었던 원주민은
그 유명한 마오리족입니다

마오리족은 1200년대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뉴질랜드 도착했을 때 나라의 이름을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오테아로아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뉴질랜드라는 이름과 함께
아오테아로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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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급함! 저를 대신해서 군대 가주실 분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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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구 저를 대신해서 군대 갈 사람 구함 사례 합니다!!

 

혹시 저를 대신해서 군대에 다녀오실 분 계시나요?
돈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안 되겠죠

군대는 누군가 대신 가줄 수 없을뿐더러
이런 공고를 올리면 저는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런 공고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습니다

https://youtu.be/Xg-aiTwwEZQ

 


조선은 크게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네 가지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중 양반, 중인, 상민을 양인이라 불렀는데
16살~60살의 양인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1500년대 이후부터는
양반들은 군대에 가지 않도록 제도가 바뀌어
군인의 대부분이 농민들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족해져
집안의 식량뿐만 아니라 나라의 식량이 부족해지자 
군대에 가는 대신 베와 무명을 바치도록 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포목 혹은 군포라고 불렀으며
보통 면포 2필을 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군대에 가거나 포목을 바치는 행위를 군역이라고 불렀습니다



군대에 간다는 것은 이 시기에도 의무였고 강제적이었기 때문에
해당되는 사람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이야기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스님이 되면 군역을 면제시켜줬는데
이것 때문에 스님이 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후에는 인증받은 스님만 면제시켜주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군대를 대신 가줄 사람을 구하기도 했는데
이런 행위를 대립이라고 했으며
이렇게 대신 군대에 간 사람을 대립군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립군은 시대에 따라 나라에서 금지하기도 하고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1447년 세종은 대립을 막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1663년 현종은 재해를 복구하는데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대립군을 쓰기도 했습니다

대립군을 고용하는 비용은 면포 1필, 쌀 반가마니 가치 정도였는데


대립군이 유행하자 벼슬아치가 일하는 곳인 관아
지금의 시청 같은 곳에서 중간 상인과 결탁해
수수료를 받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400년대에는 면포 8필로
1500년대에는 60필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돈이 없는 사람은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고
군대에 가면 농사를 짓지 못하니 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중종은 고용 비용을 면포 3필로 제한했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대립군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700년 이세정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종을 대립군으로 보냈는데
종이 과거시험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도록 힘쓴 뒤
자신이 그 과거시험장에 들어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일부의 대립군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임금만 받아 가기도 했으며
군인이 부족해 대립군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립군에 대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포목의 양을 1필로 줄이기도 하고
군대 환경을 개선하기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균역법(1750년)이라고 합니다


균역법은 시행됐을 당시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군역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어 대립군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본인의 군대 문제는 본인이 해결하는 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제는 사라져버린 문제가 많은 대립군이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자
공을 세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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