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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미라를 만들었을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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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를 만드는 방법

어떤 처리를 해서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시신을
미라라고 합니다

흔히 고대 이집트에서 만든
붕대가 감겨있는 시신을 떠올리곤 하죠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하게 되는데
이때 영혼이 돌아올 수 있는 육체가 있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https://youtu.be/R5uGeYfIpNg


사람이 죽으면 우리 몸속에 있는 소화 효소가
죽은 세포를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시작으로 시신이 부패되기 때문에
부패를 막기 위해선 뇌를 포함해
몸속에 있는 모든 장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뇌는 현대에 와서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뇌를 그리 중요하지 않은 기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뇌를 제거했습니다

이때 대못이나 꼬챙이 같은 것을 코에 집어넣어
머릿속을 휘저어 뇌를 으깨 액체로 만든 뒤
다시 코로 빼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부패를 막기 위해 두개골에 송진을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하기 위해선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에게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때 심장과 깃털의 무게를 비교했는데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부활하지 못하고

착한 짓을 많이 해서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장을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생각했죠

 


뇌를 제거한 뒤에는 옆구리를 살짝 갈라
몸속에 있는 장기를 꺼냈는데
이때 심장은 다른 장기보다 더 소중하게 다뤘습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는 임세티
늑대의 머리를 하고 있는 두아무테프
개코원숭이의 머리를 하고 있는 하피
매의 머리를 하고 있는 케베세누에프입니다


이집트인들은 꺼낸 장기를 나트론이라고 불리는
탄산수소나트륨과 함께 이들의 머리가 조각된 단지에 넣어 보관했는데

간은 임세티의 단지에 위는 두아무테프의 단지에
폐는 하피의 단지에 장은 케베세누에프의 단지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장기가 보관된 네 개의 단지를
카노푸스의 단지라고 부릅니다

심장은 심판을 받기 위해 필요한 장기였기 때문에
피를 제거한 뒤 다시 몸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트론을 몸속에 채워 넣었으며
다시 한번 나트론을 이용해 시신을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나트론은 알칼리성 물질로 몸속에 남아있는 박테리아를 죽이고
피부의 수분을 빼앗아 피부를 건조하고 딱딱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시신은 나트론속에서 35일~40일정도 건조했으며
건조가 끝난 뒤에는 비어있는 곳에 톱밥이나 천을 넣어 몸의 형태를 유지시킨 뒤
시신이 부패되지 않게 향나무 오일을 발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신에 붕대를 감은 뒤
나무로 만든 관이나 돌로 만든 관에 넣으면
미라를 만드는 작업이 끝나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파라오나 계급이 높은 사람만 이런 과정을 거쳤고

평범한 사람들은 특수한 약품을 넣어 장기를 모두 녹인 뒤
붕대를 감는 식으로 처리 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미라로 만든다고 해서 부활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것이 굉장히 바보 같은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이 시신을 미라로 만든 덕분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어
부검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왜 죽었는지
전염병이 있었는지 같은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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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전국민을 상대로 직접 벌인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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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접 벌인 전국민 사기극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북한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
이른바 민통선 근처에 있는 북한강에는
평화의 댐이라는 이름을 가진 댐이 하나 있습니다

평화의 댐은 1987년 만들어지기 시작해 2005년에 완공된 댐으로
지금은 북한강의 수위를 조절해
강원도에 많은 비가 왔을 때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서울이 물바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86년 북한에서는 북한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 댐을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댐이라고
북한에서는 임남댐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금강산댐을 조사해 본 결과
댐이 완성될 경우 최대 200억 톤의 물이
저장될 수 있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0억 톤이라고 하면 쉽게 가늠이 안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댐인 소양강댐이 29억 톤인 것과 비교해 보면
어마어마한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드는 이유는
200억 톤의 물을 저장한 뒤 한 번에 방류시켜
우리나라 특히 서울을 물로 공격하는
수공을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자료에 따르면
200억 톤의 물이 서울로 오면 저층 아파트는 쉽게 잠길 것이고
국회의사당은 물론 고층 빌딩도 물에 잠겨
수도권에 사는 1500만 국민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986년 10월 30일 당시 건설부 장관이었던 이규효는
이런 자료를 공개함과 동시에 국가적 위기 사태임을 강조했고

여러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금강산댐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련된 자료들이 하루 종일 뉴스에 나왔기 때문에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 확정되었었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을 방해하기 위해 댐을 건설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두환은 1986년 11월 26일
금강산댐 맞은편에 커다란 댐을 만들어
북한의 수공을 막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댐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전국민을 상대로 성금을 걷었죠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강제적으로 성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은 물론 죄수들도 해외에 있는 사람들도 성금을 냈습니다


이런 내용이 TV로 방영됐고
전문가들의 토론도 이어졌기 때문에
성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만 600억 원 정도
여기에 세금을 합쳐 1700억 원으로 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평화의 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댐은 정부가 사람들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할 때
우리가 직접 대통령에 적합한 사람을 뽑습니다
이것을 직접 투표라고 하죠

반대로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을 뽑을 대리인을 뽑아
대리인이 대통령을 뽑는 것을
간접 투표라고 합니다


전두환은 두 번의 간접 투표로 11대, 12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각각 99.4%, 90.11%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었습니다

이것은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가 이미 정해져있던 투표였기 때문이죠



전두환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약 8년의 재임 기간 동안 독재정치를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대통령 직선제(직접 투표)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1986년에 이 요구가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전두환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
이것을 위해 북한의 금강산댐을 이용한 것입니다

1993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금강산댐의 최대 저수 용량은 60억 톤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전두환은 이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200억 톤이라고 일부러 과장해서 말했던 것이죠

 


북한이 수공을 위해 금강산댐을 만들었다는 것도
200억 톤의 물이 서울로 온다는 것도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말했던 것도
각종 자료들도

여론을 돌리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2003년에 밝혀진 것에 따르면
금강산댐의 최대 용량은 200억도 60억도 아니라
26억 톤이라고 합니다

당시 북한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큰 댐을 만들 수 없었음에도
언론 장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강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이런 사기극이 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의 댐 사건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7년 6월에 있었던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여론이 좋지 않을 때, 정권에 위기가 닥쳤을 때
북한을 이용하는 전략을 북풍이라고 합니다

 


북풍은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전략인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어 있고
언론을 통제하기 쉬웠던 과거에 더 큰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북풍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전만큼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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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만든 사람은 세종일까 집현전 학자들일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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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정말 세종대왕 혼자 만들었을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 한글
한글은 누가 만든 것으로 알고 계시나요

2018년에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55.1%
세종은 지시만 하고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4.4%
세종 혼자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7%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종 혼자?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면 같이?

설문에도 나타난 것처럼 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같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의 교과서에도 그런 식으로 나와있어
같이 만든 것으로 가르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한글은 세종대왕 혼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kdVTaegeM4


조선 초기 사용되던 문자는 한자였습니다

조선 이전부터 사용된 문자였지만 배우는 것이 어려워
일반 백성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문자를 몰라 결국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죠

그래서 세종은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1443년 12월 30일 세종실록을 보면 한글에 대한 내용이 최초로 등장합니다

언문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한글인데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글이라고 해서 언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해서 훈민정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언문이 한글을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종 역시 한글을 언문이라고 부르기도 한 걸 보면
꼭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글을 만들기로 결정한 일
한글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 전혀 기록되지 않고
만들어진 뒤의 기록이 첫 번째인 것을 보면
신하들은 한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집현전은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만약 세종이 한글을 함께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당황했으며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 3품의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는
상의도 없이 문자를 만든 것에 대해 비판했으며
한글을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의 눈치를 보며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는데
이렇게 큰 국가적 사업을 명나라의 허락도 없이 했다는 것 때문에
혹시라도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정 4품의 집현전 직전 김문 역시 한글에 대해 계속 반대했는데
세종은 이런 김문에게 곤장 100대를 명하기도 했습니다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면
이들이 반대하거나 처벌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 훈민정음 언해본입니다

해례본과 언해본에는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에 대해 쓰여있는데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로 시작하는 유명한 문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간에 보면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 짜랄 맹가노니
라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내'가 세종을 말하는 것으로
세종이 혼자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이 아끼던 문관 신숙주는 1441년부터 집현전에서 일했는데
일부의 사람들은 신숙주가 세종과 함께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쓴 책인 보한재집을 보면
세종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 보면
한글은 세종이 혼자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지만
이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책을 만든 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세종이 아주 깐깐하게 관여했다고 합니다
한자의 표준음을 정해 훈민정음으로 설명한 책인 동국정운을 보면
한자음에 대한 근거를 모두 세종이 정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중국의 한자 사전인 운회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는 일에는
그의 아들인 동궁(문종), 진양대군(세조), 안평대군이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만약 세종이 왕이 되지 못했더라면
최고의 언어학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세종이 언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죠

집현전의 학자들조차 세종에게 비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런 재능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나
위대한 문자인 한글이 만들어진 것이죠

대왕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왕인 것 같습니다


추가로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이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이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글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해례본이 만들어진 날로 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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