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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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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마피아

 

 

영양분이 풍부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리는 우유

물론 이것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완전식품이라고 부르는 게 맞느냐 하는 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유를 먹어왔고
치즈, 버터, 생크림 등
여러 가지 제품으로 변형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음식이라고는
확신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유를 유통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착유하는 곳의 위생도 신경 써야 하고
상온에선 쉽게 상해버리기 때문에
운송할 때 보관 방법도 신경 써야 합니다

하지만 위생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과거에는
우유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유통기한이 따로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유를 먹다 탈이 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었습니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은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죠



특히 미국에서는 농장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우유병이라고 하는 질병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우유는 상할 경우 맛과 냄새가 변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 당시 우유를 판매하던 사람들은
이것을 속이기 위해 우유에 밀가루나 계란을 넣었다고 합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조사에 들어갔는데
마이클 투오메이라는 정치인은 낙농업자의 편을 들어주며(1858년)
어린이들한테는 오히려 상한 우유가 좋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우유 시장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유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189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알 카포네라는 이름을 가진
시카고의 마피아 조직 두목이었죠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대는 1920년대부터였는데
이때 미국은 금주법이 시행되던 때였습니다

금주법은 미국 내에서 술을 만들거나 판매하거나
수입하거나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으로

술을 퍼마시는 것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정을 신경쓰지 않는 남편들이 늘어나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금주법이 시행된 직후 사람들은 술을 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술을 찾았습니다

미국 내에서 술을 만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을 밀주라고 합니다


밀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불법을 행하는 마피아 조직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는데
이때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사람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바로 알 카포네입니다

술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선 관리자가 필요했는데
금주법으로 인해 걷어지는 세금의 양이 줄어들어
충분한 사람을 뽑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알 카포네는 경찰, 정치 쪽 사람들을 매수해
세력을 더 키워갔죠

 


그는 밀주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살인으로 인한 체포는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 카포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쨌거나 미국의 금주법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법으로 금지하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술을 통제하기는커녕 마피아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 되었죠

1930년에 들어서 금주법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폐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금주법이 폐지되면 사람들은 굳이 밀주를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알 카포네는 금주법이 폐지되는 것에 대비해
다른 사업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우유입니다

일부의 성인들만 마시는 술과 달리
우유는 남녀노소 누구나 마시기 때문에
술을 파는 것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장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피아답게 총을 들이밀며 불법적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우유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이 당시 우유 배달은 수레나 마차를 이용했는데
이것 때문에 상온에 오래 노출돼 쉽게 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배달도 제때 오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알 카포네는 밀주를 유통할 때 사용하던 냉장 수송차를 이용해
신선한 우유를 빠르게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총으로 무장한 조직원들을 보내
우유의 품질을 속일 수 없게 만들었죠

 

 


또 사람들이 자신이 판매하는 우유만 사 먹을 수 있도록
한 가지 법안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통기한이었습니다

당시 우유에는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한 우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카포네는 힘 있는 정치인을 로비해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은 우유는 판매할 수 없는 법안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카포네의 우유는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법이 시행될 경우
한 발짝 앞서 나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이때부터 우유에 유통기한이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알 카포네가 돈을 벌기 위해
우유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했던 이런 행동은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신선한 우유
믿을 수 있는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만들어줬고
우유 시장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알 카포네가 유통기한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아직까지 논란거리로 남아있긴 합니다


알 카포네의 손녀인 디어드리 카포네는
할아버지가 우유 사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병(bottles)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통기한에 관련된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알 카포네 덕분에 좀 더 신선하고 안전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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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사? 재평가 시급한 콜럼버스의 진실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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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사 콜럼버스의 진실

 

 

과거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되지 않았을 땐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 끝부분으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고
계속 가면 결국 떨어질 것이라 믿었죠

하지만 항해사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고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계속 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비웃었지만
콜럼버스는 믿음을 가지고 항해를 했고
그 결과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콜럼버스는 위대한 항해사이자 개척자
한 명의 위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죠

그런데 사실 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고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기까지 했습니다

콜럼버스는 1451년에 태어났는데 이 시대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죠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알고 있던 이유는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 때문입니다

그는 1828년에 콜럼버스의 삶과 항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콜럼버스만이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고
다른 유럽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님에도 말이죠

 


책이 유명해지면서 콜럼버스의 업적이 과장되기 시작했고
위인전이 등장하고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콜럼버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워싱턴 어빙의 이 책은
미국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쓰인 거짓된 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비웃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서쪽으로 항해할 경우
아시아까지 거리가 20,000km는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한 것은 1492년인데
이때 기술력으로는 식량과 물을 보관하지 못해
20,000km를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일본까지 거리가 4,40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충분히 항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기 때문이죠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에게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가는 항해를 시작했는데
항해의 목적 자체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시아에 있는 보물을 약탈하고
그곳을 식민지화하기 위함이었죠


실제로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할 경우
도착한 땅을 관리할 수 있는 총독 지위를 줄 것
지위가 자손에게 세습될 것
땅에서 얻는 수입의 10%를 줄 것
무역을 할 경우 이익의 8%를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콜럼버스의 항해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였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아메리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한 것이 되었습니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전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아메리카 원주민, 네이티브 아메리칸
혹은 인디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인디언은 인도 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이들을 인디오(indio)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돼 인도 사람이 아님에도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어쨌거나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스페인으로 돌아가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며
1493년 2차 항해, 1498년 3차 항해, 1502년 4차 항해를 나갔습니다


그는 항해를 하는 동안 수많은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린아이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금을 캐오라고 시켰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하고 고문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신체를 잘랐고
원주민들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노예가 된 원주민 중 일부는 스페인으로 팔려갔으며
끔찍한 이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그의 항해일지에 나와있으며
항해에 참여했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라스 카사스의 책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는 동안
원주민들은 계속 학살당했습니다

 


그가 식민지배했던 곳은 히스파니올라 섬인데
이곳의 인구는 30만 명이었지만
콜럼버스의 학살 이후 500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항해사 콜럼버스는
사실 잔혹한 학살자였던 것입니다


1504년 자신의 항해를 지원해 주던 이사벨 여왕이 죽자
콜럼버스의 지위도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1506년 콜럼버스는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망하는 그날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은
인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원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03년 이탈리아의 아메리코 베스푸치는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서쪽으로 항해를 해서
아메리카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콜럼버스와 다르게 이곳을 신대륙으로 생각했고
이 사실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 신대륙은 아메리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해서
누구도 달걀을 세우지 못할 때
끝을 조금 부숴 달걀을 세운 일화를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도 사실은 콜럼버스의 일화가 아니라
1377년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일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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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이는 민속놀이 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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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이는 민속놀이

여러분은 무엇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시나요?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을 보거나
은잡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컴퓨터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을 땐 뭐 하면서 지냈나 싶을 정도이죠

제가 어렸을 땐 컴퓨터가 보급화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주로 밖에 나가 놀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는 같은 동네에 사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은
모두가 친구 같은 그런 느낌이었죠

지금보다 더 옛날에는 같은 동네 사람들과
혹은 동네끼리 연합을 해서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민속놀이라고 말합니다

민속놀이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제가 진짜 죽이는 민속놀이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눈을 뭉쳐 상대방에게 던지는 눈싸움을 하곤 합니다

이때 눈에 돌을 넣으면 더 아프게 던질 수 있다고
장난 식으로 말하곤 하지만
그랬다간 상대방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돌을 넣어 던지진 않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우리의 조상님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으셨나 봅니다

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 고구려 편에 보면
고구려는 매년 정초에 패수 위에 모여
좌우 두 편으로 나누고 서로 돌을 던지며 싸운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패수는 대동강을 말하는 것이고
싸운다는 것은 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면서 논다 즉 놀이를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게다가 이때 국왕은 요여를 타고 와서 구경한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에는 왕이 직관을 할 정도로 꿀잼인
돌을 던지며 싸우는 놀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놀이를 돌 석(石)에 싸움 전(戰) 자를 써서 석전이라고 부르거나
돌싸움 혹은 편싸움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려의 역사가 쓰여있는 고려사에도 석전이 등장하는데
이때는 주로 단오에 즐겼다고 합니다

고려의 32대 왕인 우왕은
석전놀이를 구경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정3품의 벼슬을 가진 이존성이라는 신하가 구경을 말리자 
다른 신하에게 이존성을 구타하라고 명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에서도 석전놀이는 계속 이어졌는데
역시 단오에 주로 즐겼습니다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은 석전놀이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석전을 보면 아픈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석전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기록이 계속 나오는 것으로 봐
일부의 사람들은 석전을 계속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그냥 돌을 던져 상대방을 쫓아내면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돌을 던지는 것이다 보니
부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돌에 맞아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놀이였기 때문에
부상이나 사망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석전이 시작되면 하늘에서 돌이 비 오듯 쏟아졌기 때문에
구경하던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석전은 놀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세종 때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했던
부산포, 제포, 염포를 삼포라고 부르는데

1510년 이곳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폭동이 일어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삼포왜란이라고 하는데

이때 석전선수 수백 명을 전투에 투입시켜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석전을 전쟁 대비 훈련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끈을 이용해 던지는 식으로 파괴력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석전이 사용되긴 했지만
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활용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전투 수단이 아닌 놀이로서 석전은 계속 이어져 오다
1909년 동네 주민이 던진 돌에 일본인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은 후
일본에 의해 금지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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