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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하면 죽는다고 믿었던 사람들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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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하면.... 죽는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위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씻는 것을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생관념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씻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로 알려진 루이 14세는
1643년부터 프랑스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목욕을 거의 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루이 14세가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던 이유는
목욕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당시 유럽사람들은 목욕을 하면 죽게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인 흑사병은
3명중 1명을 죽일정도로 무시무시하고 공포의 대상인 병이었습니다

흑사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일부의 학자들은 목욕을 하는 것이 감염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목욕을 하면 뜨거운 물의 증기가 모공을 열고
열린 모공으로 흑사병 뿐만 아니라
공기중에 있는 병균이 쉽게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런 이야기는 빠르게 퍼졌고
목욕은 청결을 유지해 감염을 막아주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감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수단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17세기에도 여전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루이 14세는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주 가끔씩 천으로 얼굴과 손을 닦을 뿐이었습니다



루이 14세의 아버지인 루이 13세는 7살때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취가 날 수밖에 없었는데
루이 13세는 나는 겨드랑이 냄새가 난다라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선 목욕을 하면 안됐고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악취가 나니
악취는 곧 건강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루이 14세의 남동생인 필리프 1세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는
몸이 너무 더러워 어쩔 수 없이 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지인에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며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씻지 않아 발생하는 더러움은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대체했으며
악취는 향수를 뿌려 덮었다고 합니다

 


이런 덕분에 향수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던 건 환경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목욕을 하기 위해 따뜻한 물을 공급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지금과 다르게 당시의 비누는 가격이 꽤 비쌌기 때문이죠



목욕에 대한 안좋은 인식은 18세기까지 이어지다
19세기에 들어 비누에 부과되던 세금이 없어져
비누가 보급화 되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스퇴르에 의해 세균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위생관념이 바뀌어
다시 목욕을 자주 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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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피가 모여 만들어진 축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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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피로 만들어진 축구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에는 많은 축구팀이 있었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리그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에 의해 대부분의 축구팀이 해산되었죠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독일은 소련의 동독과
미국, 영국, 프랑스의 서독으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수도였던 베를린 역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축구팀은 다시 창단되었는데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동독과 서독이었기 때문에
축구 리그 역시 따로 운영되었습니다

 


1966년 동베를린을 연고지로 하는
FC 우니온 베를린이라는 축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니온 베를린은 창단과 동시에 2부 리그에서 우승해
1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이미 1부 리그에 베를린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포어베르츠 베를린, bfc 디나모)
우승을 하고도 1부 리그에 승격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또 좋은 성적을 거둬 유럽 대항전에 진출할 기회가 생겼지만
소련의 영향을 받는 팀에게 제재를 가하며
재정적 위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독일이 다시 통일되었을 때
축구 리그 역시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동독 리그에서 뛰던 축구팀은 서독에서 만든 리그로 들어가게 되었죠

당시에는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
2부 리그인 2. 분데스리가, 3부 리그인 오버리가로 운영되었습니다

우니온 베를린은 오버리가에서 시작했지만
1993년, 1994년 우승을 차지하며
오버리가에 있기엔 무대가 좁다는 걸 증명했지만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2부 리그로 올라가지 못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3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로 가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문제를 해결하고
2부 리그에서 활약하던 우니온 베를린은
저조한 성적을 보이다 2004년 결국 3부 리그로 강등 당하고
2005년엔 4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맙니다

특히 2004년엔 재정적 문제가 또 터지면서
리그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팀이 해체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우니온 베를린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팬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헌혈을 하면 문화상품권을 주거나 영화관람권을 줍니다

독일에서는 헌혈을 하면 돈을 준다고 합니다

팬들은 돈이 부족한 우니온 베를린을 위해 헌혈을 했고
받은 돈은 우니온 베를린에게 기부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만 약 20억 원 정도
우니온 베를린은 팬들의 피 덕분에 다시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고
2008년엔 새롭게 만들어진 3부 리그인 3. 리가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노후화된 관중석 일부가 무너져 시즌을 시작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러자 이번에도 팬들이 나섰습니다
각자 삽을 들고 와 경기장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 여가시간을 바쳤고 주말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우니온 베를린은 2009년 2부 리그로 올라갔고
2019년 팀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니온 베를린의 팬들 중 일부는 자신의 피를 바쳐 지켜낸 팀이
1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을 볼 수 없는 사망한 팬들을 기리기 위해
분데스리가 개막전에 그들의 사진을 가져와 함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축구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분데스리가에는 어우뮌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차피 우승은 뮌헨이라는 뜻인데
분데스리가에 있는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팀이
초반에 아무리 흔들려도 결국 우승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59년 동안 31번 우승을 했고
현재 10년 연속 우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즌 우니온 베를린이
뮌헨의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뮌헨이 우승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번 시즌은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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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고의 검색 엔진 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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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고의 검색 엔진

뭔가 모르는 게 있을 때 얻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이때 어떤 검색 엔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조금은 다르게 나오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론 구글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네이버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이전엔 야후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땐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민감한 정보를 물어보거나
범죄자를 심문하는 경우 알려주지 않으려고 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상대의 입을 열기 위해
물리적 검색 엔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련된 사람을 심문해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의 범죄자들은 입을 꾹 닫기 때문에
이들의 입을 열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엔 고문을 하는 것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곤 했죠

조선에선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넓적한 몽둥이를 이용해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곤 했는데
이것을 형문이라고 불렀습니다

형문은 보기보다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정강이를 맞다 죄인이 죽는 경우도 자주 있었죠


그래서 한번 때릴 때 30번 이상 때리면 안 됐고
형문을 다시 집행하기 위해선 3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만약 형문을 버티고 입을 열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낙형으로 넘어갔는데
낙형은 불에 달군 쇠를 몸에 지지는 고문 방법이었습니다


낙형은 기원전 1600년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고대 국가 은나라의 주왕이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극을 보면 쇠를 온몸에 지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 죄인이 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선에서 시행될 때는 발바닥을 지졌다고 합니다


인간은 몸이 불에 탈 때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고통을 주는 낙형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끔찍할 수밖에 없었고
당하다 보면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1498년 9월 16일 연산군일기에는
형문을 버틴 죄인에게 낙형을 썼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는 내용이 있고

1507년 1월 27일 중종실록에는
역시 형문을 할 때는 입을 열지 않다가
낙형을 하니 바로 입을 열었다는 내용


1612년 10월 28일 광해군일기에는
낙형을 했더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낙형은 그야말로 당시에 사용된 최고의 검색 엔진이었던 것이죠



지금의 검색 엔진도 가끔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낙형 역시 최고의 검색 엔진이었지만

고통을 참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형은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 역시 낙형을 자주 사용했는데
어느 날 치료를 위해 뜸을 뜬 것도 이렇게 아픈데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건 얼마나 아프겠냐며
죄인에게 동정심이 생길 수 있으니 낙형을 폐지하라고 말해
1733년 이후부턴 낙형은 공식적으론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서 역할을 했던 포도청에선
도적들을 심문하기 위해 여전히 사용하기도 했고

도망가거나 물건을 훔친 노비에게 벌을 주기 위해
양반이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낙형은 살이 달궈지는 소리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지글이라고 불리고 있기도 한데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인권 문제로 없어진 검색 엔진이지만
아주 가끔 비공식적으로 다른 형태의 검색 엔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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