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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왜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이런말을 했을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일러스트를 이용해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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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금토패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이순신은 1592년부터 시작된 임진왜란 때 엄청난 활약을 하며
조선을 지켜낸 최고의 명장이자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실제로 2024년에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는 이순신이었습니다

2019년, 2014년에 한 조사에서도
1위는 이순신이었습니다

 

https://youtu.be/1yAAUA0UeIA

 


이순신은 굉장히 많은 어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그리고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라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어록도 있습니다



1593년 임진왜란이 한참 진행 중일 때
2월 27일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조선, 명 연합과 일본간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벽제관 전투라고 하죠

벽제관 전투에서 조선, 명 연합은 일본에 패했고
이 전투를 계기로 명나라는 전쟁에 대한 의욕을 잃고
일본과 협상을 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일본과 협상을 진행했던 사람은 명나라의 담종인입니다

담종인은 협상을 진행하면서 일본의 고니시가 있었던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중 1594년 일본 수군이
경남 고성 당항포에 쳐들어와 약탈과 살인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이 함선을 출격시켜 이들을 모두 쓸어버렸는데
이것을 제2차 당항포 해전(1594.04.23)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은 당항포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명나라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협상을 하고 있는 중에 전투를 하면
협상이 긍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담종인은 이순신에게
일본은 이제 돌아가려고 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일본군 근처에 머무르지 말고 일본군과 쓸데없는 전투를 하지 말아라
라는 식의 일종의 통지서를 보냅니다

이것을 금토패문이라고 하죠


금토패문을 받아본 이순신은 화가 잔뜩 날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당항포 해전이 시작된 이유는 일본이 쳐들어 왔기 때문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쪽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인데다
전투를 승리했음에도 이런 패문을 보냈기 때문이죠

이 패문을 보고 이순신은 담종인에게 답장을 보내는데
여기에는 일본이 먼저 쳐들어왔다
조선이 우리의 집인데 어디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냐
일본은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지인 변사만단, 자고미문수신지의야

다시 말해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패문을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이라고 합니다



즉 인터넷에 이순신의 어록이라고 떠도는 이 말은
실제로 이순신이 한 말인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은 금토패문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순신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몰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2016년 조선의 문신 정탁이라는 사람이 쓴 임진기록에
금토패문의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알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이 이렇게 화를 낸 뒤에도
명나라와 협상을 하고 있는 중에도
일본은 이순신의 말대로 여려 차례 조선을 공격했으며


협상은 일본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전쟁을 이어가다 
당시 일본의 최고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되면서
1598년 12월 16일 길고 길었던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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