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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도 피웠던 조선시대 담배의 역사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일러스트를 이용해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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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과 맞담배 피우던 조선시대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던 때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마야 문명때부터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습니다

 

마야 문명 벽화를 보면 담배를 피우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담배를 피울 때 나오는 연기 때문에 주술을 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 피웠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의해서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고

광해군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담배의 중독성과 위험성 때문에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지만

담배가 처음 들어오던 조선시대 때에는

어린아이들도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지금의 담배는 궐련 형태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형태로 보급되어 있지만

조선시대 때 담배가 들어올 때는 파이프 형태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양반이나 평민이나 똑같은 담뱃대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반들은 평민들과 똑같은 담뱃대를 사용한다는 것이 불만이었고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담뱃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태우는 담배통

연기가 지나가는 통로인 설대

입으로 물고 빠는 물부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반들은 담배통과 물부리를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게 꾸몄으며

일부는 금으로 치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설대의 길이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대의 길이가 길어지면 자신이 불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불을 붙여줄 사람이 필요 했죠

 

즉 설대가 길다는 것은 불을 붙여줄 하인이 있다는 뜻이고

자신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양반을 따라다니며 담배에 불을 붙여주던 하인을 연동이라고 불렀는데

어린 아이들이 이런 일을 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반들만 사용하던 길다란 담배를 장죽이라고 불렀으며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사용하던 짧은 담뱃대를 곰방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담배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약초로 활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에 보면

담배는 약 학목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담배는 가래를 없애주고 소화를 도와주고

숙취에 도움을 주고 추위를 막아주는 신비한 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일본에 의해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담배를 남쪽에 서 온 신비한 풀이라고 해서

남령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南(남녘 남) 靈(신령 령) 草(풀 초)

 

그래서 어른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까지 담배를 피웠던 것입니다

 

프랑스에 장 니코라는 사람은

담배를 약초로 활용하기 위해 재배를 시작했는데

담배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장 니코에 의해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이라는 물질의 이름도

장 니코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에서도 담배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담배 농사가 쌀 농사보다 돈이 더 됐기 때문에

쌀 농사보다 담배 농사를 짓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보통 손님이 오면 차와 술을 대접하지만

담배를 접한 뒤로는 담배를 피우는 문화가 자리 잡기도 했고

담배를 이용해 교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1636년에 발생한 청나라와 조선의 전쟁인 병자호란 때

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포로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청나라에 담배를 지불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담배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담배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너도나도 담배 농사를 짓다보니

결국 쌀이 부족하게 되었고 쌀이 없으니 굶주리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담배를 끊지 못했고

끼니는 걸러도 담배는 거르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담배가 알려질 때 약초로 알려졌기 때문에

여자는 물론 어린 아이들까지 담배를 피웠으며

 

서당에서 훈장님과 학생이 맞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처럼 담배에 대한 예절이 자리 잡지 못했던 때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워 화재가 많이 일어나기도 했고

 

심지어 임금님 앞에서 신하가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네요

 

조선의 철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보면

담배는 돈이 많이 들고 건강을 나쁘게 하는

이로운 것보다 해로운 것이 더 많은 물건이다 라고 나오고

 

담배를 구하러 다닐 시간에 공부를 한다면 대현이 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나옵니다

 

마치 오늘날 부모님들이 게임할 시간에 공부를 하면 서울대에 가겠다!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담배 중독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제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자호란이 있기 전 청나라가 언제 조선에 침입할지 모르는 시점인데도

모여서 담배만 피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조선시대의 상황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담배 피우는 것과 농사 짓는 것을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22대 왕인 정조는 제사 지낼 때 술은 금지하지만

담배는 피워도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조는 실제로 엄청난 애연가였다고 합니다

 

23대 왕인 순조는

애들이 젖만 떼면 담배를 찾는다고 한탄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개항 이후 궐련 형태의 담배가 들어오기도 했고

신분제도가 폐지 되면서 긴 담배인 장죽은 사라지게 되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담배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약초로 알려졌던 담배이기에

어린 아이도 피웠고

예절도 몰랐던 담배이기에

사람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피웠지만

 

지금은 담배가 해롭다는 것도 알고 있고

어떻게 피워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담배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피울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본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가 아닌 현대를 살고 있으니

담배 예절을 잘 지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피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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