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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침이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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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가끔은 내 몸이 내 몸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내 의지대로 살아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내가 아무리 자고싶지 않아도

피곤해지면 어쩔 수 없이 자야하고

내가 아무리 하품을 하고싶지 않아도

한번 나오려고 하면 참기 힘듭니다

 

술을 마시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었을 때

억지로 먹어보려고 하지만 어김없이 구토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거나 기침이 나오려고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내 몸이고 내 의지대로 이것을 제어하고 싶지만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이 꽤 많이 있습니다

 

 

기침은 보통 감기에 걸렸을 때 가장 많이 나오긴 하지만

음식을 잘못 먹어서 사레 들리거나

담배 연기를 맡으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용히 해야하는 곳에서 기침이 나오려고하면

억지로 참아보지만

목이 따갑고 간지러워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왜 기침이 나오는 것이며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기침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생리현상이 꽤 많이 있습니다

트림이나 방귀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기침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기침은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고

폐와 기관지에 있는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는 방어 동작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기침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차가운 공기에 의한 기도 수축을 미리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겨울이 되면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침은 감기에 걸렸을 때 많이 나오게 되는데

감기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호흡기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호흡기에 해로운 물질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많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오는데

콧물이 삼켜지는 과정에서 기관지를 자극해 기침이 나오기도 하고

감기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해 기침을 하기도 합니다

 

음식을 잘못 삼켜 기침이 나오는 것을 사레 들렸다고 하는데

음식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갔을 때 기침이 나오게 됩니다

 

기도는 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침을 하지 않으면 음식이 폐로 들어갈 수 있고

음식물이 기도를 막는 기도 폐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기침을 하는 것이죠

 

사레 들렸을 때 나오는 기침은 금방 끝나고

감기에 걸려도 3주 이상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런 기침을 급성기침이라고 합니다

 

기침이 3주 이상 지속되면 이것을 만성기침이라고 합니다

 

3주를 넘어 한달동안 기침이 나온다면

천식, 폐렴,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만성기침의 경우 활동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자려고 누우면 기침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눕게되면 머리의 위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위액이 역류해 식도를 자극하고

혈액이 가슴쪽으로 몰려 폐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럴 경우 잠에 쉽게 들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기 때문에

조짐이 보인다면 빠르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기침과 비슷한 재채기 역시

이물질을 빼내는 행위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기침은 기관지 자극에 의해 나오는 것이라면

재채기는 코 신경 자극에 의해 나오는 것이죠

 

목에 있는 이물질을 빼내기 위한 것이 기침이라면

코에 있는 이물질을 빼내기 위한 것이 재채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재채기는 나오기 전 코가 간질간질 거리게 됩니다

 

햇빛을 보면 재채기가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에취 증후군 혹은 광반사 재채기라고 하는데

동양인의 경우 네명중 한명이 가지고 있는 병입니다

 

이것의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고

치료법도 없는 불치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치병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올 때 재채기가 한번 나올 뿐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기침과 재채기는 몸에 있는 안좋은 물질을 빼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참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다면 불쾌할 수 있으니

예의를 갖춰서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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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드는 이유와 멍 색깔 변화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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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멍 효과 있을까?

멍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피부에 생기는 자국같은 것이고

하나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죠

 

저는 피부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피부에 생기는 멍보다 멍때리다의 멍이 먼저 생각 납니다

 

 

 

생활을 하다보면 멍이 생기기도 하는데

부딪힌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날 몸을 보면 멍들어 있어서 신기할 때가 있죠

 

자면서 얼마나 심하게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멍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군대에 있을 때 아침에 일어났더니

다리쪽이 엄청 아파서 보니 멍이 들었더군요

다리를 관물대에 넣어서 자는 구조였는데

아마 자면서 다리를 들다가 관물대에 부딪친 것 같습니다

 

멍이든 곳에 충격을 받으면 굉장히 아프기도 하고

피부와 전혀 다른 색을 띄기 때문에

얼굴쪽에 멍들면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싸우거나 맞은 것이 아닌데도 괜히 해명을 해야할 것 같고

어떻게든 가리려고 노력합니다

 

멍은 색깔도 꽤 다양한데

멍 색깔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멍은 왜 드는 것일까요

 

멍은 주로 피부에 충격을 받았을 때 많이 생깁니다

특히 넓은 면적에 부딪치거나 문에 끼였을 때 주로 생기죠

 

어떤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을 때 생기기도 하며

주사를 맞으면 그 자리에 멍이 들기도 합니다

 

또 철분이 부족하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멍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피부에 멍이 드는 이유는 적혈구가 혈관 밖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산소는 우리 몸 전체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적혈구는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산소를 운반합니다

 

적혈구가 지나다니는 길(혈관)을 모세혈관이라고 하는데

모세혈관은 아주 얇아서 외부 충격에 쉽게 파괴됩니다

 

날카로운 것에 충격을 받으면 피부가 뜯겨나가고 모세혈관도 파괴됩니다

모세혈관에서 흐르고 있는 적혈구는 피부 밖으로 나오게 되죠

 

하지만 넓은 면적의 무언가에 의해 충격을 받으면

피부는 뜯겨나가지 않지만 모세혈관은 파괴됩니다

 

이때 적혈구는 피부 밖으로 나오지 않고

피부 안쪽에 고이게 됩니다

 

원래라면 피(적혈구)는 혈관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혈관이 파괴되어 피가 피부 안쪽에 고이게 되면

눈에 보이게 되고 이것이 바로 멍인 것이죠

 

피가 빨간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적혈구 때문입니다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헤모글로빈에는 철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분은 산소와 만나면 빨간색으로 보입니다

 

오래된 쇠를 보면 녹이 슬어 빨간색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철분이 산소를 만나 그렇게 된 것이죠

 

철분이 빨간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헤모글로빈 역시 빨간색으로 보입니다

적혈구에 헤모글로빈이 들어있으니 적혈구 역시 빨간색으로 보이죠

 

그래서 피도 빨간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멍은 혈관밖으로 나온 피이기 때문에

처음에 생긴 멍 역시 빨간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만나지 못하면 검붉은 색으로 변합니다

혈관을 타고 흐르면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계속 빨간색으로 있을 수 있지만

혈관 밖으로 나오게 되면 산소를 운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검붉은 색이 됩니다

 

헌혈을 한 피를 보면 검붉은 색을 띄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산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색깔이 변한 것이죠

 

검붉은 색은 피부를 통해서 보면 파란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빨간색이었던 멍이 시간이 지나면 파란색 멍으로 바뀌는 것이죠

 

손목이나 손등에서 보이는 핏줄이 파란색인 이유도 이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이후에 멍은 보라색으로 변합니다

이때가 되면 멍이 서서히 치유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파괴된 모세혈관이 복구 되고

새로운 적혈구가 생성됩니다

 

혈관 밖으로 나온 적혈구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파괴됩니다

 

보라색이었던 멍은 이제 차츰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죠

 

적혈구에 있는 헤모글로빈은 파괴될 때 빌리루빈이라는 물질이 나옵니다

빌리루빈은 황갈색을 띄기 때문에

멍은 갈색이나 노란색으로 바뀌고

색이 서서히 옅어저 사라지게 됩니다

 

멍을 빨리 낫게 해주기 위해선 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냉찜질을 하고 이후에 온찜질을 해야 합니다

 

냉찜질을 하면 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멍이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죠

 

이후에 온찜질을 해주면 고여있는 혈액을 빠르게 분산시킬 수 있습니다

 

멍이 들면 멍이 든 부위에 계란을 문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란이 멍을 흡수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계란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둥글기 때문에 마사지 하기에 적합합니다

 

멍이든 부위에 강하게 마사지를 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살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계란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마사지 역시 살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멍이 든 부위에 마사지를 하면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계란으로 마사지를 하면 계란이 멍을 흡수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

계란에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사지를 할 때 꼭 계란일 필요는 없습니다

둥글고 마사지 하기에 쉬운 물건이라면 그 어떤 것도 상관 없습니다

 

부딪친적도 없는데 멍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몸에 혈소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혈소판은 혈관이 파괴되어 혈액이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혈액을 응고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죠

 

혈소판이 부족하면 혈관이 쉽게 파괴되고

혈액이 응고되지 않아 멍이들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혈소판 생성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거나

철분제를 먹는다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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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 이들은 왜 상복을 두고 싸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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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 1년 vs 3년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언젠가 과거가 될 것이고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를 역사로 배우겠죠

 

그럼 그들도 지금 우리처럼 똑같이 생각할까요?

이사람들은 왜 이런걸로 싸웠지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도 변화고

어떤 사고방식이 맞다고 할 수 없으니 분명 미래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를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 세상을 떠난다는 건 정말 슬픈일인 것 같습니다

영원히 살고싶지만 우리는 생명체이고 노화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죠

 

이 슬픈 감정을 달래고 그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

장례식을 치룹니다

 

우리나라에선 장례식을 3일동안 치루는데

이것을 삼일장이라고 하죠

 

삼일장은 정해진 규칙이나 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편이나 사정 혹은 사고방식에 따라서 장례식을 하루만 할 수도

이틀동안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장례식은 아주 중요한 의식중 하나였습니다

예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을 치루는 것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죠

 

49재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번 7주동안 장례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으며

횟수로 3년동안 장례를 치루는 삼년상이 있기도 합니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에는 복장도 신경써야합니다

이때 입는 옷을 상복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때는 지금보다 예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덕분에 장례식을 치루는 것도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죠

 

조선 18대 왕인 현종 때 현종의 아버지인 효종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는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죠

 

효종의 장례식을 치뤄야 하는데 자의대비는 효종의 계모로서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 문제가 됐습니다

이것을 예송논쟁이라고 하죠

 

 

예송논쟁은 총 두번 있었습니다

1차 예송논쟁은 기해년인 1659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1차 예송논쟁을 기해예송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1차 예송논쟁에서 자의대비는 효종의 계모로서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였습니다

 

참고로 자의대비는 인조의 두번째 아내로

장렬왕후로 불리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관(성인식)혼(결혼)상(장례식)제(제사)에 대한 예의는

일반 평민과 사대부는 주자가례를 왕실은 국조오례의를 따랐습니다

 

주자가례와 죽조오례의는 의례에 대한 예절이 적혀있는 책입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이런 논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조, 자의대비, 효종의 관계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자리는 첫번째 아들이 물려받았습니다

인조의 첫번째 아들은 소현세자였기 때문에 인조 이후에는 소현세자가 왕의 자리를 물려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의 자리를 물려 받아야 했지만

인조는 두번째 아들인 봉림대군(효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줍니다

 

이후 효종이 세상을 떠나고 효종의 장례식을 치뤄야 하는 과정에서

국조오례의를 찾아봤지만 두번째 아들이 왕에 올랐을 때는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것이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하필 두번째 아들이 왕이 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죠

 

사대부의 주장은 두가지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왕도 사대부와 똑같기 때문에 주자가례에 따라 상복을 1년만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주장과

비록 두번째 아들이지만 왕권을 물려받았으니 특별 대우를 해서 국조오례의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 상복을 3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주장이었죠

그런데 서인의 주장은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왕과 사대부가 똑같다고 말하면 왕권을 무시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첫번째 아들이 아니라 두번째 아들이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니

효종은 진짜 왕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죠

 

이들의 말은 '진짜 왕은 효종이 아니라 소현세자의 아들이다'로 해석되기 때문에

서인은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서인은 말을 바꿨습니다

국조오례의에 보면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첫째 둘째 상관없이 아버지는 1년을 입으니

아들도 똑같이 1년을 입도록 하자 라고 말이죠

 

하지만 서인들은 여전히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현종에게 서인이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어쨌거나 효종은 현종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정통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인들이 미울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종은 서인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윤선도를 귀양보내고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만 입도록 지시했죠

 

이 당시 조선은 꽤나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같은 외세의 침략으로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있었죠

신분을 살 수 있는 공명첩이 발행되면서 돈만 있다면 평민도 양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선택할 정도로 예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리학을 강조했죠

 

성리학이 강조된 시점에서 현종은 효종의 정통성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자의대비는 상복을 1년만 입게 된 것입니다

 

1차 예송논쟁은 현종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1차 예송논쟁이 끝내고 현종은 사대부들에게 더이상 이것에 대해 논쟁할 것을 금지할 정도였죠

 

하지만 1674년에 효종의 아내이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2차 예송논쟁이 시작하게 됩니다

 

1차 예송논쟁처럼 자의대비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자의대비는 인선왕후의 시어머니로서 상복을 몇년 입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됐습니다

 

인조의 아내는 자의대비는 인조의 두번째 아내였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이 어릴 수 밖에 없었죠

 

효종은 1619년생 인선왕후는 1618년생이지만

자의대비는 1624년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효종과 인성왕후가 세상을 떠나는 동안에도 살아있을 수 있었죠

 

서인과 남인의 주장은 이번에도 똑같았습니다

왕과 사대부는 똑같기 때문에 인선왕후도 두번째 며느리로 봐야하고

그런 이유로 자의대비의 상복은 9개월만 입어야 한다고 서인들은 말했습니다

 

남인은 여전히 왕은 특별하기 때문에 효종은 첫번째 아들로 봐도 무방하고

그런 이유로 자의대비의 상복은 1년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인의 주장을 다시 살펴봅시다

1차 예송논쟁 때 이들은 역모의 오해가 있을까 국조오례의를 이용했습니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첫째 둘째 구분없이 상복을 1년 입었으니

이번에도 역시 첫째 둘째 구분없이 상복을 1년 입어야 했습니다

 

서인들은 계속 체이부정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국조오례의를 따르게 되면 첫째 둘째 구분이 없어지니

효종의 정통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체이부정은 첫째 아들이 아니라 둘째 아들이 왕권을 물려받았으니 정통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체이는 첫째아들을 말하는 것이고 부정은 아니다 라는 뜻이었죠

 

그래서 이들은 이번에는 국조오례의가 아닌 경국대전을 이용했습니다

 

현종은 1차 예송논쟁때는 국조오례의를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경국대전을 이용하니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고 말하며

남인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 결과 자의대비의 상복은 1년으로 결정났죠

그리고 체이부정을 주장했던 서인의 송시열을 귀양보내버립니다

 

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이기 때문에

이후에 남인들의 정치 참여도가 높아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싸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누구는 1년을 주장하고 누구는 3년을 주장하니

절반인 2년만 입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논쟁은 상복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외세의 침략도 있었고

조선 인구의 100만명이 이상이 사망했다고 알려진

경신 대기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안정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죠

 

그래서 이들은 성리학을 이용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길 원했습니다

성리학에 따르면 개인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한다면 나라는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임금과 신하사이, 부모와 자식사이, 어른과 아이사이에서

서로가 예의를 지키고 그들의 역할을 다 한다면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 성리학은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어쨌든 둘째 아들인 효종이 왕이 됐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서인들은 이것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왕 앞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면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에

참고 참다가 상복 문제가 터졌을 때

효종의 정통성에 대해 돌려서 이야기한 것이죠

 

 

이 당시 조선은 서인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서인은 율곡 이이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집단인데

율곡 이이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하고 있었죠

 

남인은 동인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퇴계 이황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집단입니다

퇴계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은 이기론으로 합쳐져 이야기 됩니다

 

이기론에서 이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기는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이와 이황은 본질과 형태에 대한 사상차이를 보이고 있었죠

 

이기일원론은 이와 기를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이기이원로는 이와 기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효종을 예로 들어보면 효종의 이는 효종이 본질으로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둘째아들입니다

기는 효종의 현재 형태로 조선의 왕이 되겠죠

 

이기일원론은 이와 기가 같다고 말하기 때문에 효종이 왕이라도 둘째아들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으니

사대부나 일반 평민들의 예의에 대해 적혀있는 주자가례를 이용한 것입니다

 

이기이원론은 이와 기가 다르다고 말하기 때문에 효종이 비록 둘째아들로 태어나긴 했지만

조선의 왕이기 때문에 첫째아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왕실의 예의에 대해 적혀있는 국조오례의를 이용한 것이죠

 

서인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 인조반정 이후

주도권을 계속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했죠

 

왕과 사대부가 같다고 말하면 왕의 권력을 사대부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역모의 위험이 있더라도 1차때는 1년을 2차때는 9개월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남인들은 소수만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위치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주도권을 가지고 오길 원했죠

 

그래서 이들은 서인들과 반대 의견인

1차때는 3년 2차때는 1년을 말한 것입니다

 

어쨌든 현종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좋게 말해주는 남인들이 예뻐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차때는 서인의 편을 들어줬지만 결과적으로 2차때 남인의 편을 들어주면서

남인들은 정치 주도권을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예송논쟁은 꽤 위험한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왕의 정통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예송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법 평화적으로 해결된 왕의 정통성 논쟁이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적 재난인 경신 대기근때는 예송논쟁을 하지 않았다는 점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논쟁을 했다는 점 때문에

현재에 와서 제법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예송논쟁으로 조선의 정치가 한단계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서인과 남인으로 이야기해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선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인과 남인이 여당과 야당으로 바뀐 것 뿐이죠

 

하지만 자신들의 철학을 가지고 논쟁을 했던 과거와 달리

철학도 없이 서로 반대 의견만 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 예송논쟁 이후로 정치가 한단계 발전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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