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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나 렌즈가 눈 뒤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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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뒤로 이물질이 넘어간다면?

저는 눈이 예민한편이라 쉽게 피로해지고 밤에는 언제나 빨간 눈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눈썹도 잘 빠지는편이라 눈에 눈썹도 많이 들어가고

그런 이유 때문에 먼지나 다른 이물질이 눈에 잘 들어갑니다

 

심지어 안구건조증도 있어서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오면

눈뜨기 힘들때도 있네요

 

마지막으로 시력도 좋지 않아서 안경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눈에 엄청난 이상이 없어서 앞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두개 있어서 물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거리감도 잘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눈은 아주아주 중요한 신체 기관이지만

다른 기관들처럼 뼈나 피부가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이 눈을 보호하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앞이 보이지 않죠

 

눈을 뜨고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에

눈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는 눈의 가장 커다란 적군중 하나입니다

요즘에는 조금 덜하긴 하지만 최근에 많이 발생하는 미세먼지 역시 눈에게는 좋지 않은 물질이죠

(눈 뿐만 아니라 전부이긴 하지만)

 

눈에는 속눈썹이 있어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긴 하지만

오히려 속눈썹이 눈에 들어가

이물질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불편하기 때문에 곧바로 빼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분명 거울로 봤을 때 눈에 뭔가 있었는데

빼내려고 하다 점점 옆으로 가버리고

그런 뒤에 이물질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눈 앞으로 와서 이물질을 빼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계속해서 이물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불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혹시나 눈 뒤로 들어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내가 실명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여러가지 걱정거리가 생기죠

 

이렇게 제거하지 못한 이물질은 어디로 가버리는 것이며

이물질을 제거하지 못하면 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 몸 속에 있는 여러가지 장기들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뼈와 피부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뇌 역시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뼈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눈도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속눈썹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오잉?)

 

속눈썹의 역할은 외부의 먼지나 이물질이 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지만

모근이 짧기 때문에 쉽게 빠지고

그런 덕분에 눈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대표적인 이물질입니다

 

이물질을 막는 녀석이지만 오히려 이물질이 되어버린다니

참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네요

 

눈은 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눈을 검은자 흰자로 나눠서 부르는데

검은자라고 부르는 곳은 홍채와 동공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막이라는 투명한 점막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흰자라고 부르는 곳은 공막이라고 하며

결막이라는 투명한 점막이 보호하고 있죠

 

결막은 세개로 나뉘어집니다

 

눈꺼풀 뒤쪽에 있는 검결막

(눈꺼풀을 안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검결막)

안구 앞쪽에 있는 구결막

 

그리고 검결막과 구결막을 연결시켜주는 원개결막입니다

 

결막은 낭(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주머니는 입구와 출구가 같은 곳에 있습니다

 

한쪽은 막혀있고 한쪽은 뚫려있는 구조입니다

 

검결막과 구결막을 연결시켜주는 원개결막은 막혀있는 구조입니다

 

만약 눈에 이물질이 들어온다면

이물질은 결막 위를 떠다니게 됩니다

 

이물질을 빼내려고 노력해봤지만 사라지는 경우

눈 뒤로 넘어간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지만

눈의 구조를 생각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개결막이 눈과 눈 뒤 공간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이물질은 원개결막에 막혀 눈 뒤러 넘어갈 수 없습니다

 

렌즈를 끼고 잠을 자다가 잠에서 깨어보니

한쪽 눈에 렌즈가 없다면

혹시 렌즈가 눈 뒤로 들어간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눈의 구조를 생각해본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개결막이 렌즈가 눈 뒤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렌즈가 눈 뒤로 넘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원개결막에 이상이 없다면 말이죠

 

눈에서 렌즈를 뺀적도 없고 이물질을 뺀적도 없는데

렌즈나 이물질이 눈에서 사라졌다면

눈꺼풀 뒤쪽에 있거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만약 너무 불안하고 계속 눈에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면

안과를 가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눈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눈은 눈물을 흘려 이물질을 빼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많은 이물질이 제거 되죠

 

이렇게 보면 인체는 참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가 노력하니까요

 

언제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노력해주는 우리의 몸입니다

 

눈에 뭔가 들어갔을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비비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손에 있는 이물질이 들어가버릴 수도 있고

눈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바람을 불어달라고 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고 합니다

바람으로 이물질이 이동하면서 눈에 상처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눈에 뭔가 들어갔을 땐 흐르는 물을 이용해 씻어내거나

눈을 깜빡여 눈물을 내는 것이 가장 좋고

잘 나오지 않는다면 젖은 면봉을 이용해 빼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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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게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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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소변 그리고 대변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싸는 것이죠

잘싸지 못할때의 고통은 정말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것을 싸기 위한 고통은 아주 크다?

 

이런 것이 중요한만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약을 이용하기도 하고 식이요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관장라떼라는 것도 있더군요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배변활동을 할 수 있다니

원리가 궁금해집니다

 

 

커피는 19세기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고종황제가 커피를 아주 좋아했다고 하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만큼 커피의 인기도 계속 올라간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밥을 먹은 뒤에는 커피를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카페에는 커피를 비롯한 여러가지 음료를 많이 팔기 때문에

커피를 꼭 마시지 않아도 밥을 먹은 뒤에는 카페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걸음입니다

 

참고로 저는 커피가 몸에 맞지 않아서 커피보다는 과일음료를 선호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커피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루의 끝을 커피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커피는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이다라고 말할정도네요

 

그런데 때로는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몸에 있는 콩팥이라는 장기는

혈액속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걸러진 노페물은 몸속의 수분과 합쳐저 방광으로 보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오줌으로 배설하죠

 

콩팥은 혈액속의 여러가지 물질을 일정한 비율로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혈액속 수분은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혈액속에 수분의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콩팥은 수분의 비율을 조절합니다

 

필요있는 물은 사용하고 남는 물은 방광으로 보내버리죠

 

만약 땀을 많이 흘려서 수분의 비율이 낮아지면

역시 콩팥은 수분의 비율을 조절합니다

방광으로 보낸 수분을 다시 흡수해 수분의 비율을 높혀줍니다

 

이때 뇌하수체에서 항이뇨호르몬이라는 것이 분비됩니다

항이뇨호르몬은 바소프레신이라고도 불리며 오줌의 양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땀을 많이 흘려 수분의 양이 부족하면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콩팥에게 오줌을 만들어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죠

 

우리 몸에 수분이 비율이 낮아지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배설하려고 했던 수분을 다시 흡수하는 것입니다

 

땀을 많이 흘리면 몸의 수분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항이뇨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서 오줌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 몸의 수분 비율이 높아지기 떄문에

항이뇨호르몬이 적게 분비되면서 오줌이 나오도록 합니다

 

커피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카페인은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을 막고

방광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면 오줌이 자주 마렵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마셨을 때도 오줌이 자주 마려운데

술에 들어있는 에탄올이 항이뇨호르몬의 분비를 막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음식은 위로 보내지고

소화과정을 거쳐 창자로 보내집니다

 

이후에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져

대변으로 배출하게 됩니다

 

커피에는 카페인뿐만 아니라 클로로겐산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클로로겐산은 위속에 있는 음식물을 평소보다 빨리

창자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또 커피를 마시면 가스트린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됩니다

가스트린은 위산이 분비되도록 유도하고

창자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들어줍니다

 

커피에 있는 클로로겐산과 가스트린이라는 호르몬 때문에

소화과정이 아주 빠르게 이루어지고

이것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 똥이 마려운 것입니다

 

똥이 마려운 이유는 카페인이 아니기 때문에

카페인이 거의 없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때로는 쾌변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좋은 행동이다 좋지 못한 행동이다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는 행동일수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각자 다르고

카페인이 과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조절해서 마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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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발생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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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조만의 잘못이었을까?

전쟁은 언제나 하는쪽도 당하는쪽도 피해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한 명분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보려면 양쪽 국가의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하죠

한쪽의 상황만 본다면

다른쪽은 언제나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때 발생한 두번의 전쟁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이 원인이었다고 많이 말하긴 하지만

당시 청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는 15대 왕인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인조는 원래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서인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었죠

 

이 사건을 인조반정이라고 합니다

 

반정이 끝나고 서인들은 높은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인조반정의 핵심 세력중 한명이었던 이괄을 제외하면 말이죠

 

이괄은 자신의 활약에 비해 좋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조는 반정이 끝난 뒤 이괄에게 조선 정예군 1만을 지원해주며

북방(후금)을 경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이괄은 평안도로 보내졌죠

 

인조는 반정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혹시 또 누가 반정을 일으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주아주 예민한 상태였죠

 

이때 꽤 많은 사람들이 역모를 꾸민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괄의 아들 역시 역적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괄은 평안도에 부임을 하게 됐다는 것과 아들이 역적으로 몰렸다는 것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을 이괄의 난이라고 합니다

 

이때 후금은 명나라와 전쟁중이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후금에게는 조선이 언제나 걸림돌 같은 존재였죠

 

그래서 후금은 명나라와 전쟁을 집중하고

부족한 물자를 채우기 위해

혼란한 조선을 침입하게 됩니다

 

누르하치는 1616년 여진족을 통일하고

칸의 자리에 오른 뒤 금나라를 잇는다는 뜻으로 후금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명나라는 커져가는 후금을 견제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후금의 힘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1619년 명나라와 후금은 사르후에서 맞붙었습니다

이 전투를 사르후 전투라고 하죠

 

사르후 전투에는 조선군도 참전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사대관계기도 했고

과거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줬기 때문이죠

 

하지만 임진왜란의 피해가 컸던 것일까요

명나라는 후금에게 패했고

조선군은 후금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이때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는데

광해군은 사대관계인 명나라에게 군대를 보내며 명분을 챙기면서

상황을 봐서 항복하라고 말하며 후금에게도 실리를 챙기는 정책을 펼칩니다

 

이것을 광해군의 중립외교라고 말하죠

 

명나라와 후금은 1626년 영원성에서 다시한번 맞붙게 됩니다

후금은 이 전투에서도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영원성에는 홍이포라는 최신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홍이포의 탄환은 후금의 군대를 쓸어버렸습니다

후금은 영원성을 넘지 못했고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후금은 영원성 전투 이후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늘을 찌르듯 높았던 사기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이 전투 이후로 후금의 칸인 누르하치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누르하치 이후로 홍타이지가 칸의 자리를 이었지만

전쟁이 길어진 탓에 후금의 상황이 안좋게 흘러갔습니다

 

후금은 원래 교역을 통해 먹고살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기 때문에

교역을 하지 못하면 식량을 수급할 수 없었죠

 

후금의 가장 큰 거래처는 명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와 전쟁을 하는 바람에 교역을 할 수 없게 되었죠

 

조선에선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때문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괄의 난은 실패했기 때문에 이괄쪽에 있던 사람들은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중 일부는 후금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들은 후금에게 현재 조선의 상황을 이야기 해줍니다

 

인조때 친명배금정책을 했다고 말하긴 하지만

인조반정의 핵심 세력중 일부는 후금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실제로 광해군때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금은 영원성을 넘지 못했고 교역도 하지 못해서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상기후현상 때문에 후금은 대기근에 시달렸죠

 

이 현상은 17세기에 발생한 소빙하기가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후금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조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경술년인 1670년에서 신해년인 1671년에 발생한 경신대기근과

을해년인 1695년에서 병자년인 1696년에 발생한 을병대기근이 바로 그것이죠

 

경신대기근때는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너무 추워 입을 옷이 없어서 무덤을 파 옷을 훔쳐입었다는 기록도 있고

먹을게 없어서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대기근때 조선의 상황이 이정도였으니

후금의 피해도 아주 컸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기근때 후금에서는 식량값이 8배나 올랐고

조선처럼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도적들도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금의 칸인 홍타이지는

상황때문에 어쩔수 없이 도적이 되었으니

엄하게 처벌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후금은 대기근으로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전쟁으로 교역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명나라를 멸망하기는 커녕

명나라에게 멸망당할 상황이었죠

 

그래서 후금은 어딘가에서 물자를 뺏어와야 했습니다

바로 아래쪽에 혼란한 상태의 조선이 가장 맛있는 먹잇감이었죠

 

1627년 후금은 조선을 침입하게 됩니다

이것을 정묘호란이라고 하죠

 

후금은 조선 북쪽을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인조는 후금의 침입 사실을 듣고 강화도로 피난을 갔습니다

 

후금이 강화도를 치기 위해선 수군이 필요했지만

후금의 수군은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명나라와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조선과 전쟁을 오래끌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후금은 조선과 협상을 하게 됩니다

 

후금은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길 원했습니다

물자를 뺏어오기 위한 명분을 세운 것이죠

 

조선은 후금과 형제관계가 되더라도 명나라와 관계는 유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후금은 조선을 통해 부족한 물자를 보충했고

세력을 다시 키워나갔습니다

 

후금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조선에게 더 많은 물자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형제관계가 아니라 군신관계가 될 것도 요구했죠

 

1636년 인조의 아내인 인열왕후가 사망을 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후금의 사신도 인열왕후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여기서 후금의 사신은 후금의 칸인 홍타이지가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니

축하 인사를 하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조선 입장에서 보면 황제는 명나라에만 존재했기 때문에

후금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조선은 성리학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명나라를 배신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후금은 이후에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꿨습니다

세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점점 더 많은 물자가 필요했죠

 

청나라의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조선에게 받는 물자로는 한계가 있었죠

 

청나라는 또다시 어딘가에서 물자를 뺏어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선이 계속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밀당을 하는 점

청나라의 황제인 홍타이지에게 축하 인사를 하지 않은 점을 명분으로

다시한번 조선을 침입하게 됩니다

 

1636년에 발생한 이 사건이 바로 병자호란이죠

 

청나라는 과거 정묘호란때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가는 바람에 곤란했던 것을 경험삼아

이번에는 아주 빠르게 진격했습니다

 

청나라 인조가 피난가기 전 강화도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일찍 출발한 인조의 아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갔지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남한산성은 제법 견고했기 때문에 청나라의 공격을 꽤 오랜기간 버텨냈지만

추위와 배고픔은 버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날의 추위는 소빙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명나라가 살아있는데 어찌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있느냐며

청나라와 전쟁을 해야한다는 주전론(척화론)의 김상헌과

 

청나라에게 항복해야 한다는 주화론의 최명길이었죠

 

인조가 주전론과 주화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청나라는 강화도를 함락하게 됩니다

 

강화도에는 인조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는 이들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청나라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로 갔고

여기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때 인조는 무릎 꿇기를 한번 할때마다 세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세번 한다고 하는

삼궤구고두례를 했다고 합니다

 

오랑캐라고 부르던 적에게 한나라의 왕이 무릎을 꿇고 항복을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합니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보다 짧은 기간 펼쳐진 전쟁이었지만

임진왜란만큼 큰 충격을 준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불렀지만 이들과 군신관계를 맺게 되었고

삼전도의 굴욕이 있었기 때문이죠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게 많은 물자를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의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배후의 위험을 제거한 청나라는 명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되죠

 

인질로 잡혀갔던 아들들은 돌아왔지만

청나라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소현세자는 인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첫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인조 다음으로 왕이 되어야 했지만

소현세자가 죽는 바람에 왕권 세습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

인조는 봉림대군(효종)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봉림대군은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었지만

인조에 의해 왕이 되었고

이것 때문에 정통성에 문제가 생겨

이후에 서인과 남인이 상복 문제로 싸우는

예송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의 잘못된 판단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상황도 맞물리면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살펴보면 인조가 청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명나라를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은 명나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때 명나라의 황제는 만력제였는데

만력제는 조선에게 아주아주 큰 도움을 줬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많은 군사를 지원해줬으며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조선땅에 많은 식량을 지원해줬습니다

 

이처럼 만력제의 지원 덕분에 조선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를 배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청나라는 명나라와 전쟁으로 교역길이 끊겨버렸고

대기근으로 인한 식량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명나라와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어쨌든 청나라는 어디에선가 물자를 뺏어와야 했고

바로 아래에 가장 만만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인 조선이 있었기 때문에

두번의 호란을 일으켰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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