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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보면 힘이 빠지거나 무서운 느낌이 드는 이유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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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보면 힘이 빠지는 이유

여러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귀신을 가장 무서워할 수도 있고
벌레를 가장 무서워할 수도 있고
상상 속 괴물을 무서워하거나
다가오는 시험을 무서워할 수도 있겠죠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는
필요한 곳에 산소를 전달해 주는 고마운 물질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피를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를 보면 갑자기 어지럽고 힘이 빠지거나
구역질이 나오기도 하며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심한 사람들은 피라는 글씨만 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피를 보면 힘이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심한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경우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느려져
혈압이 낮아지는 현상을 미주신경성 실신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어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며 피부가 창백하게 됩니다
식은땀이 나거나 눈앞이 캄캄해져
쓰러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대부분 저절로 회복되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아직은 질병이 아닌 증상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피를 봤을 때 두려운 감정이 들거나 힘이 빠지는 것을
혈액 공포증 혹은 공혈증이라고 하는데

혈액 공포증은 다른 공포증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무서운 것을 보면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져 혈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혈액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피를 보면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혈압이 낮아지는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혈액 공포증의 원인을
진화론적 측면에서 설명하곤 합니다

인류의 문명이 아직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인류는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했습니다

만약 길을 걷다 날카로운 것을 밟아
발에서 피가 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는 밴드도 없고 마땅한 지혈 도구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피를 많이 흘리게 돼 꽤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를 보면 과다 출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죠

또 주변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피가 많이 있다면
위험한 동물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 역시 널브러진 시체처럼 될 확률이 있겠죠

이때 피를 보고 기절을 하게 된다면
동물이 흥미를 잃고 돌아갈 수 있으니
피를 보면 힘이 빠지고 기절하게 끔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또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적 요인이
혈액 공포증에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혈액 공포증은 보통 어린 시절에 생기게 되는데
부모가 혈액 공포증을 가지고 있을 경우
유전이 되어 자녀도 혈액 공포증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유전이 되지 않았더라도
부모가 혈액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피를 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
학습이 되어 자녀 역시 혈액 공포증이 생기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다쳐서 피가 난 경우
부모님이 과하게 보호하거나
이것이 아주 심각한 상황인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면
피가 난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며
혈액 공포증이 생기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심하게 다쳐 피를 많이 흘리거나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에 피를 봤을 때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미주신경성 실신 자체가 마땅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혈액 공포증도 별다른 치료법은 없지만
인지행동치료를 통한 심리치료로 나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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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유행했었던 행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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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행운의 편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른바 행운의 편지라는 것을 들어보거나
실제로 받아보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작성해
여러 사람에게 전달할 경우 행운이 찾아오고
편지를 무시할 경우 불행이 찾아온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혹시나 진짜 불행이 찾아오진 않을까 해서
편지를 작성해 보내신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행운의 편지는 서양에서는 19세기부터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400년대
그러니까 조선시대에 이미
행운의 편지가 유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1470년의 조선은 이상하게 다른 때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하게 들었던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농사가 잘 되는 것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가뭄이 드는 것은 나라에 아주 심각한 문제였죠

조선의 왕이었던 성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내기까지 했습니다(성종 1년 3월 29일)


하지만 가뭄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문제가 지속되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한 귀신이 하늘로부터 능성(전남 화순) 부잣집에 내려와
한 번에 밥 한 동이와 두붓국 반동이를 먹고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고 떠났다는 것이죠
(성종 1년 5월 26일)

"잘 먹었고
내가 보니까 이번달에는 비가 안오고
다음달에는 비가 올거야
근데 만약에 다음달에 비가 안오면
올해 농사는 망했다고 봐야지"

 


그리고 귀신은 임진년, 갑신년, 신유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올해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도 덧붙였습니다

이 귀신은 입은 세개인데 머리는 하나만 있다고 해서
삼구일두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만약 귀신의 말대로 다음달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의욕이 많이 떨어질 것이고

해당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게 될 수 있으니

성종은 나라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해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고 퍼트린자를 벌하라 명했습니다

 


하지만 가뭄은 끝나지 않았고
삼구일두귀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상황속에서
비슷한 종류의 다른 소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남 보성 부잣집에 키는 한 길(3m)이 넘으며
몽두만 쓴 귀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한 말의 쌀로 밥을 지어 먹은 뒤 예언을 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몽두는 죄인의 얼굴을 덮어씌우던 물건인데
다른 옷은 입지 않고 몽두만 쓰고 있었다 하여
단피몽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은 머리가 하나에
상투가 일곱이라고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곧 내 동생도 내려올건데
걔가 오면 풍년이 들거야 걱정하지마"

라는 내용의 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소문으로는
명나라 원광사에 3년전에 죽은 149살 스님이 있었는데
이 스님의 혼이 와서

올해(1470년)에는 바람과 비가 몹시 심해
악한 사람은 다 죽을 것이고
올해와 내년에 전염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
집은 있지만 사람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고
아홉 여자가 한 지아비와 함께 살며
열 집이 한 마리의 소를 함께 부리며
집에는 연기가 끊어지고 곡식은 쌓아두고 먹을 것이 없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눈이 멀게 될 것이고
이 글을 베껴 다른 한 명에게 전하는 자는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두 명에게 전하는 자는
집안이 불행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세 명에게 전하는 자는 평안함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마치 오늘날 유행하는 행운의 편지처럼 말이죠

심지어 이 글은 요동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라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소문을 낸 사람들이 붙잡혀
곤장을 맞고 노비가 되는 벌을 받으며 마무리 됐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들이 최초로 소문을 낸 것이 맞는지
냈다면 무슨 목적으로 낸 것인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왕의 귀에 전달되기도 했고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그 당시 사람들도 행운의 편지 때문에
꽤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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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차나 일본차의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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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을까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운전을 하게 된다면
우측통행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모든 차량은
운전대가 왼쪽에 있기 때문에
운전을 할 때 원활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항상 오른쪽으로 통행하도록 정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 제작되는 차량의 경우
운전대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존재해
운전할 때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대체 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제작하는 것일까요



전 세계에서 좌측통행을 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영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입니다

1769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증기 자동차가 발명되고
1885년 독일에서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로
운송수단에 대한 발전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마차를 이용해
먼 거리를 이동했었죠

통행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마도 마차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마부라고 하는데
마부는 채찍을 이용해 말을 조종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마부는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있었죠

여러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의 경우
마부가 왼쪽에 앉아야 말을 조종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마차는 마부 혼자만 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태우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뒷자리가 아니라 옆자리에 타기도 했기 때문에
마부가 왼쪽에 앉아 오른손으로 채찍질을 하면
옆이나 뒤쪽에 있는 사람이 채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아오 아저씨!!! 조심좀!!!!!"



이런 이유 때문에 마부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오른쪽에 앉아야 했습니다

오른쪽에 앉아 마차를 몰면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시야 확보에도 용이하고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마차를 피하는 것도 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 자동차를 만들 때
운전석을 오른쪽으로 정한 것입니다

이런 문화는 영국에서부터 자리 잡혀간 것으로 보여지며
영국의 영향을 받았던 일본이나
식민지였던 인도, 호주, 뉴질랜드 같은 국가들은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고
자동차를 만들 때 운전석을 오른쪽으로 했던 것이죠



하지만 현재 꽤 많은 국가가 좌측통행이 아닌
우측통행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과거 교황이 보니파시오 8세일 때
성지순례 시 좌측통행을 하도록 지시했는데

이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교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좌측통행이 아닌
우측통행을 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우측통행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독립을 할 때 프랑스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우측통행으로 바뀌게 되었고

많은 국가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우측통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측통행의 경우 운전대가 왼쪽에 있어야
운전하기 편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왼쪽으로 제작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영향으로 좌측통행이었지만
광복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시 우측통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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