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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은 왜 곱슬머리가 많을까? 흑인이 레게머리를 하는 이유



생머리인 흑인을 상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요?


굉장히 어색하죠

물론 생머리인 흑인도 있긴 합니다만

순수 흑인이 생머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동양인이 푸른눈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참고로 제 머리는 생머리입니다

생머리라고 표현하기 좀 그렇네요 쌩머리입니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들이 항상 난감해 하고 파마를 권합니다


뭐 어쨌든


우리나라에선 흔히 레게머리라고 불리는 드레드록스를 떠올려도

흑인이 먼저 생각나고


상당히 많은 머리스타일을 할 수 있는 황인이나 백인에 비해서

머리스타일에 제한이 많이 있는 듯한 흑인입니다


흑인의 머리는 왜 대부분 곱슬머리일까요?




흑인의 곱슬은 황인이나 백인의 곱슬과는 다르게

그 정도가 굉장히 심합니다


머리를 관리하지 않고 그냥 기르면 폭탄머리라고 불리는 아프로 머리가 되거나

심한경우 두피를 뚫을정도로 머리가 긴다고 하네요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곳은 아프리카 대륙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20만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났던 지역도 아프리카인 것이죠


아프리카는 태양이 뜨겁게 오래 내리쬐는 곳입니다


우리의 피부는 자외선을 받으면 피부의 보호를 위해

멜라닌을 만들어냅니다


멜라닌은 우리의 피부를 까맣게 만들죠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가 까맣게 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마이야르 반응)

2018/07/15 - [은근한 잡다한 지식/과학 잡다한 지식] - 고기는 왜 맛있을까 고기를 잘 굽는 방법 마이야르 반응


그렇게 계속 햇빛을 받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흑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이 곱슬이냐 직모냐를 결정짓는 것은

머리카락의 단면 모양입니다


황인의 머리카락 단면 모양은 동그라미입니다

단면 모양이 정원에 가까울수록 직모

타원에 가까울수록 곱슬이 됩니다


백인은 머리카락 단면 모양은 타원이죠


흑인의 머리카락 단면 모양은 백인보다 훨씬 더 심한 타원입니다

그래서 납작하거나 일그러진 모양인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카락 단면 모양에 따른 머리카락 모양입니다

백인보다 더 심한 타원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곱슬머리 보다

훨씬 더 심한 곱슬머리가 나오는 것이죠



우리의 신체 중에서 햇빛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은 머리입니다

곱슬머리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차단하고

머리카락의 곱슬거리는 부분에 공기를 보관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아주죠

머리에는 뇌가 들어있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이것을 보호해 주는 것이죠


더 많이 곱슬거릴수록 더 많은 공기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곱슬머리는 공기가 잘통합니다


머리에서 땀이 날 경우

빠르게 식혀줘야 하는데

곱슬머리는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머리에서 나는 땀이 바로바로 식을 수 있는 것이죠



아마 태초의 흑인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단계에서 나타난 흑인 전부가

곱슬머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많은 흑인이 곱슬머리였겠지만

그 빈도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겠죠


하지만 아프리카의 태양을 버텨내기 위해선

직모보다 곱슬이 더 효과적이었고

그런 덕분에 더 많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죠


생존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자손을 번창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모인 흑인보다

곱슬인 흑인이 더 많이 분포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직모인 흑인은 점점 사라졌고

곱슬인 흑인이 대부분이 된 것이죠



만일 인류가 처음 나타난 곳이 아프리카가 아니었다면

인류의 최초는 흑인이 아닐수도 흑인은 곱슬이 아닐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덕분에

그곳의 환경에 적응을 해야했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카락이 점점 더 곱슬머리인 쪽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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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기 태극기의 역사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언제부터 지금과같은 모습이었을까요?

인터넷에 태극기를 검색해보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태극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이렇게 많은 태극기들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태극기는 언제 만들어졌으며 처음 만들어진 태극기는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태극기 문양이 담고있는 의미(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 - 제발 한국인이면 이 글 봅시다




태극기는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조선 왕을 상징하는 어기인 태극 팔괘도를 변형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청나라는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중국 당시에는 청나라죠)



그 당시 청나라는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의 국기를 사용했는데

이것을 황룡기라고 불렀습니다


청나라는 조선에게 황룡기를 변형해 청룡기를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앞에서 청나라는 '조선이 독립국이라면'이라고 말을 했지만

자신들의 국기를 변형해서 만들라고 한 이유는

독립국이 아니라 청나라의 속국임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죠


고종은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고종은 김홍집에게 국기를 새롭게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명령을 받는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했습니다


첫 태극기는 지금처럼 흰색 배경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흰색 배경은 백성을 뜻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

임금을 뜻하는 붉은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이 모양을 상상해보죠

흰색 바탕에 파란색과 빨간색이 합쳐진 동그라미의 국기

어떤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요?


바로 일본이죠


일본의 국기는 흰색 바탕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져있는데요

이응준이 그린 이 국기가 일본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김홍집은 중앙에 태극무늬를 두고 조선 8도를 뜻하는 8괘를 그려넣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8괘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4개의 괘를 지우고 4개의 괘만 남긴 뒤

시계방향으로 45도 돌려 태극기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기는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죠


이 국기는 조선을 거쳐 대한제국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국기의 사용을 금지하면서

볼 수 없나 싶었지만 1919년 3월 1일 다시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태극기의 규격이 정해져있지 않았습니다

가운데 태극 무늬의 동그라미와 4개의 괘를 사용한다는 것밖에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고나온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죠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될 때까지

태극기의 모양은 조금씩 바뀌어왔습니다



지금은 각자 다른 나라지만 과거에는 하나의 나라였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했습니다


1948년 7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 이전까지는 말이죠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 북한은 태극기를 인공기(홍람오각별기)로 교체했습니다


1949년 10월 15일 태극기는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 규격도 정했죠



그 태극기는 잘 쓰이다가 1997년 색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쓰이고 있는 것이죠



한가지 더 재밌는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입니다


대한제국때 미국인 고문이었던 데니에게

고종황제가 1890년에 수여한 태극기인데요


데니의 외손자인 윌리엄 롤스턴 1세가 태극기를 소장중인 것을 알고

정부가 환수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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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 도루묵의 어원(선조와 은어)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하시나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아무 소득 없는 헛일이나 헛수고 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나오는 도루묵이란 무엇이고

이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요?




이 말의 처음을 알아보려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조선 선조 25년에는 임진왜란이 시작됐습니다


임진왜란은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전쟁을 이야기하는데요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이라고 해서 임진왜란이라고 합니다



당시 조선군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하기 어려웠었습니다

확실한 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터라 일본은 파죽지세로 위쪽으로 계속 올라왔죠


일본군이 올라오자 선조는 피난을 갑니다

평양성을 거처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데 그곳에서 명나라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죠


너무 고된 피난길인데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기에

선조는 물론 다른 신하들도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했습니다



선조가 의주에 있을 때 한 백성이 선조에게 생선이 올려진 상을 대접합니다

이 생선을 먹은 선조는 너무 맛있어서 백성에게 생선의 이름을 물어보죠


생선의 이름은 묵이었는데

맛에 비해 생선의 이름이 주는 느낌이 너무 약해서

은어라고 생선의 이름을 바꿔버립니다


왕의 한마디에 생선의 이름이 바뀌다니

이런 것을 본다면 당시 왕의 힘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 이후 선조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조는 자신이 피난할때 먹었던 은어를 다시 먹었습니다


하지만 궁궐에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이 존재했고

피난할 때에 비해서 편안한 상태였죠


그래서 그런지 은어는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극한의 배고픔에서 먹는 음식은 특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선조도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은어의 이름을 도로 묵으로 바꿔"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은어의 이름은 다시 묵이 되었고 이때부터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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