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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를 참으면 트림으로 나오게 될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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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를 참으면 트림으로 나올까

우리가 먹은 음식은 소화기관으로 넘어가
소화되는 과정에서 가스가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공기도 같이 먹게 되는데
공기는 가스와 합쳐져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만약 합쳐진 가스가 입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트림이고
항문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방귀입니다

성인 기준으로 사람은 하루에 평균 8번 정도 방귀를 뀌고
나오는 양은 약 1리터정도 된다고 합니다

방귀 냄새는 굉장히 지독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방귀나 트림이나 결국 똑같은 가스이니
방귀를 참으면 그것이 다시 위로 올라와
트림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귀를 참으면 트림으로 나오게 될까요?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가스는
항문으로 배출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스는 쓸모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배출되어야 합니다

 


방귀는 질소, 메테인, 이산화탄소, 수소
암모니아, 황화수소, 스카톨, 인돌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질소 같은 가스는 장내에 머무르다
다시 항문을 통해 방귀로 배출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스는 위로 올라가 트림으로 나올 것 같지만
방귀를 참는다고 해서 트림이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가끔 방귀를 많이 참은 뒤 트림을 했는데
트림 냄새가 지독해 방귀를 참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면
그것은 방귀를 참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트림 냄새가 지독했던 것입니다

질소가 장내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복부 팽만감이 느껴질 수 있고
장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변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영국 뉴캐슬 대학교 영양학과 교수인
클레어 콜린스에 따르면

나머지 가스 중 일부는 콩팥으로 넘어가
오줌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수소는 소장에 있는 모세혈관으로 흡수돼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혈액이 온몸을 돌면 방귀도 함께 온몸을 돌고
폐에 있는 모세혈관으로 넘어가
숨을 내뱉을 때 입과 코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즉 방귀를 참으면 트림으로 나오는 것 아니라
숨을 쉴 때 방귀를 쉬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때 방귀의 지독한 냄새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방귀 냄새의 원인은 암모니아, 황화수소, 스카톨, 인돌인데
이런 것들은 폐에 있는 모세혈관으로 흡수되지 않기 때문이죠



방귀를 참게 되면 직장 내 압력이 상승해
공기 주머니가 만들어져 게실염에 걸릴 수도 있고

해로운 독소가 혈관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방귀가 나오려고 하면 뀌는 것이 좋지만
환경에 따라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곤 합니다

이럴 때 무작정 참는 것보단
적당한 장소를 찾아 뀌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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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전쟁중에 사진을 찍었을까? 아주 위험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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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

지금 보시는 사진들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왜 전쟁이 발생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죠

전쟁은 총과 탄이 날아다니는
긴박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무장을 하고 있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무장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무방비해져 위험할 것 같은데

어떻게 전쟁 상황에서 사진을 찍은 것일까요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관련된 사진을 찍고
상황을 보도하는 사람을 종군기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종군은 군대를 따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때로는 기자가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군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군기자가 아니라
전쟁기자 혹은 전선기자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식 명칭은 종군기자이니
오늘 영상에서는 종군기자라고 말하겠습니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는 의미를 가지고 탄생한 단체가 적십자입니다

그리고 적십자가 전쟁터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제 협약이
제네바 협약입니다

기자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에 조항을 만들어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자는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 신분이 되어
보호를 받게 됩니다

종군기자는 전쟁 상황에서 적군에게 잡혔을 때 포로 신분이 되어
보호를 받게 됩니다


제네바 제3협약은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인데
제4조 1항 라호를 보면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제3조 1항을 보면
포로에게는 폭행, 살인, 상해, 학대, 고문을 할 수 없으며
인질로 잡거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모욕적인 대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종군기자는 전쟁터에서 제네바 협약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전쟁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전쟁을 기록하는 역사 역시 오래되었는데

고대의 전쟁 기록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이때 기록한 사람들을 종군기자라고 칭하진 않습니다

최초의 종군기자는 네덜란드의 화가 빌렘 반 데 벨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665년에 있었던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상황을 그렸는데

그가 그린 그림은 네덜란드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언론이 정식 기자를 직접 전쟁터에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1853년에 있었던 크림 전쟁 때부터였습니다
이때 파견된 기자는 윌리엄 하워드 러셀인데
그가 기록한 전쟁 자료들은 영국 타임스에 실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간호사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는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전쟁터에 나가
부상자들을 치료해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러셀의 기사를 본 후
전쟁터에 나갈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후 러셀은 미국 남북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도 파견되어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발생했던
6.25 전쟁에도 많은 종군기자가 파견되었는데
한국전쟁이라는 책을 펴내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거릿 히긴스는
우리나라 해병대의 활약을 기사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녀 덕분에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칭호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1955년에 열린 베트남 전쟁
베트남의 종군기자였던 닉 웃은
1972년 한 장의 사진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 사진 덕분에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고
베트남 전쟁을 끝내는데 큰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군기자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목숨은 하나고 총에 맞으면 죽게 됩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 관련된 국제법을 무시하는 나라도 많고
총과 포탄이 협약의 내용을 알고 비켜가는 것도 아니고
아군, 적군을 구분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취재 도중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종군기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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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부모님을 버리고 오는 고려장 진짜 존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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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모님을 버렸을까

과거 우리나라에는 부모님의 나이가 많아지면
부모님을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
그곳에 버리고 오는 풍습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장이라고 부르죠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을 버리고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씁쓸한 풍습입니다

고려장은 이름처럼 고려 시대에 있었던 장례 풍습이고
다행히도 지금은 없어진 것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고려에 이런 풍습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 의해 왜곡돼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고려장이 있었다는 기록은
1882년에 쓰인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의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에 보면 노인을 산 채로 묻어버리는 풍습이라는 고려장이
한국에 성행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그리피스는 우리나라에 총 두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차 방문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고
2차 방문 시기는 책이 나온 뒤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1차 방문 시기는 책이 나오기 전이어야 할 텐데
학계에서는 그리피스가 우리나라에 오지 않고
일본에 머무르며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쓴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조선의 잔칫상이라고 하며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는데
아무리 봐도 이것은 조선의 잔칫상처럼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려장에 대한 기록은
1919년 미와 타마키의 책 전설의 조선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동화집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책인데
각각 불효식자,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고려장에 대한 같은 내용이 나와있다고 합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산에 올라
할아버지를 버리고 지게도 함께 버리고 왔는데
어린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왜 지게를 가지고 왔냐고 물으니
아들은 아버지가 늙으면 똑같이 버려야 해서 지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크게 뉘우치고 할아버지를 다시 데리고 왔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효자전이라는 책에 나오는 중국 설화와 동일한 이야기입니다

즉 일본이 우리나라의 이야기라며 책에 쓴 내용은
우리나라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의 설화라는 것이죠

 


게다가 우바스테야마라는 이름으로 일본에도 동일한 설화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존하지 않은 풍습을 만들었던 이유는
우리 민족에게 열등감을 주기 위함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있는 무덤을 파헤쳐
값비싼 물건을 가져가기 위함이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918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세워진 나라인 고려는
불교 국가이면서 유교사상에 정치이념을 둔 국가였습니다

불교와 유교는 기본적으로 부모님께 잘하는 효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도 효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법을 만들어 불효자를 처벌하기까지 했죠

 


고려에 전반적인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고려사를 보면
부모나 남편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고 잡된 놀이를 하면 징역 1년
상이 끝나기 전에 상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으면 징역 3년에 처한다고 나옵니다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이 무덤 근처에 살며
무덤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을 여묘 혹은 시묘살이라고 하는데


직접 시묘살이를 한 사람에게는 정문(旌門)이라는
효자를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우는 문을 내리기도 했으며
직급을 높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나이 든 부모를 버리고 오는 고려장 같은 풍습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조금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신빙성 있는 여러 기록을 살펴봐도
고려장에 대한 기록은 전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고려를 떠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려장이라는 것은 없는 풍습이라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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