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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글 띄어쓰기 그 시작은 외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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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띄어쓰기 처음 시작은 외국인?

한글에 존재하는 모든 맞춤법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렵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맞춤법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많이 틀리는 맞춤법중 하나가 되, 돼의 구분인데

되, 돼는 하, 해를 넣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안되겠다의 경우 안하겠다로 바꿔보면 말이 되지만

안해겠다로 바꿔보면 말이 안되기 때문에 안되겠다가 맞고

 

안돼요의 경우 안하요로 바꿔보면 말이 안되지만

안해요로 바꿔보면 말이 되기 때문에 안돼요가 맞습니다

 

왠, 웬 역시 많이 틀리는 맞춤법중 하나인데

왜인지를 줄여서 왠으로 사용하고

어쩐일을 웬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왠지는 왜인지이니까 왠지가 맞고

웬일은 어쩐일이니까 웬일이 맞습니다

 

 

띄어쓰기 역시 어려운 맞춤법이긴 하지만

어떻게 띄우느냐에 따라서 다른 의미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규칙을 잘 지켜 사용해야 합니다

 

이불안감뭐냐 라는 문장의 경우

이 불안감 뭐냐 라고 띄어쓰면 불안감에 대한 이야기를

이불 안감 뭐냐 라고 띄어쓰면 이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그거실화 역시

어 그거 실화 라고 띄어쓰면 그건 진짜 실화라는 이야기를

어그 거실화 라고 띄어쓰면 거실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3년에 완성해

1446년에 반포한 뒤로 지금까지 잘 쓰이고 있는 우리의 문자입니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는 세로쓰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만들어졌던

훈민정음이나 용비어천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책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로 읽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보면 띄어쓰기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중국어 역시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으니

어찌보면 이런 현상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지금과 다르게 과거에는 강대국이었으니

그들의 영향을 분명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어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죠

 

한글에 띄어쓰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77년 존 로스라는 목사에 의해서입니다

 

존 로스는 선교사 일을 위해 조선에 왔지만

한글에 큰 매력을 느끼고 그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존 로스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했고

그 당시 영어에는 띄어쓰기가 있었기 때문에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띄어쓰기가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때 존 로스가 만든 책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보면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어는 가로쓰기를 사용했으니

아마도 그는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다보니 띄어쓰기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띄어쓰기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역시 한글에 큰 매력을 느끼고 띄어쓰기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호머 헐버트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고종에게 신임을 얻어 외교 관련 업무를 도왔다고 합니다

 

호머 헐버트는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도입했고

더 편한 한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1896년 출간된 독립신문에 띄어쓰기를 도입해

누구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고

 

1891년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 연구소를 설립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면서

띄어쓰기가 정식으로 도입될 수 있었습니다

 

띄어쓰기는 분명 어려운 문법입니다

 

여기에서 띄어써야하는지 붙여써야 하는지 그 기준이 언제나 명확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 다르고 예외적인 단어가 있기 때문이죠

 

못됐다라는 문장은 심보가 나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못 됐다라고 띄어쓸 경우 무언가 되지 못했다 라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7대 원장인 이상규 원장조차

글을 쓸 때 띄어쓰기가 자신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띄어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띄어쓰기가 도입된 이후로

한글을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글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세종대왕이지만

그 이후로 여러 사람에 의해 한글은 계속 발전 돼 왔습니다

 

우리는 계속 우리의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댕댕이, 커엽다처럼 야민정음에 의해 한글이 파괴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문화, 한글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단계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글을 잊지 않고 계속 사용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글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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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출신 이슬람 신자? 천재 간첩 무함마드 깐수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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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자로 위장해 들어온 천재 간첩 이야기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로
북한은 우리나라에 끊임없이 간첩을 보내고 있습니다

간첩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이 속한 나라에 다른 나라 정보를 몰래 보내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철저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1984년 한 외국인은
논문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 좋아서 눌러앉게 되었고

대학 교수로 일을 하면서
방송에도 출연하고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외국인은
북한에서 보낸 간첩이었습니다

 

 

필리핀 아버지와 레바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46년생인 이 아이는

7살 때 레바논으로 건너가 그쪽에서 생활했습니다

 

1984년 말레이시아의 한 대학에 있던 중

논문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고

같은 해 9월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논문에 관한 자료를 얻은 뒤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한국이 좋아서 계속 살게 되었습니다

 

1990년에는 단국대학교 교수로 초빙 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의 이름은

무함마드 깐수입니다

 

깐수는 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랍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어, 필리핀어

총 12가지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하나의 언어만 잘 하는 것도 정말 힘든일인데

12가지 언어를 하다니 참 대단하죠

 

과거에는 한국에서 중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깐수는 중동쪽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아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금요일마다 기도를 드리는 이슬람 신자로

한국에서는 몇 안되는 이슬람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논문에 관해 한국으로 들어온 덕분에

한국은 큰 인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능력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는 42살의 나이에 26살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도 아주 좋았습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했고 그의 이웃들은 깐수를 자상한 간디 교수라고 불렀습니다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부터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고

신문에 사설을 쓰거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잠을 자는동안 잠꼬대도 아랍어로 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한국에 큰 도움을 주는 외국인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랬던 깐수는 1996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팩스를 보내던 중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정원)에 의해 체포당하게 됩니다

 

깐수가 한국에서 했던 행동들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1946년생도 아니었고 필리핀 사람도 아니었고

이슬람 신자도 아니었고 깐수라는 이름의 사람도 아니었고

심지어 미혼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1934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북한으로 귀화한

정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간첩이었던 것이죠

 

정수일은 카이로대학교 아랍어문학과 출신

모로코 중공 대사관 2등 서시관 출신의 정수일은

 

북한에서 아랍어를 가르쳤으며

김일성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고 하비다

 

이국적인 외모와 뛰어난 능력 덕분에

1974년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게 되었고

1979년 레바논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레바논 국적으로는 활동이 힘들다고 판단해

 

튀니지, 호주,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거치다

1983년 필리핀으로 이동한 뒤 국적을 취득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정수일은 조선족이었고 북한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지만

이것을 속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그는 북한에 두고온 아내와 세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1984년 집을 구하려고 복덕방에서 이야기 하던중

북한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본 복덕방 주인이 신고를 했지만

국내 이슬람 지도자들에 의해 잡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북한에 여러가지 자료를 넘긴 죄로

재판때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그가 넘겨준 자료가 북한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없었고

간첩활동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자료였기 때문에

 

12년형을 선고받은 뒤

2000년 광복절특사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정수일은 체포 당시에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했지만

완전히 들켰다고 판단된 이후부터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학문적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안타까워했고

자신을 잊어달라는 편지를 보냈음에도 끊임없이 면회를 오는 아내에게 감동받아

더이상 간첩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출소 이후 정수일은 간첩에 관련된 일은 하지 않고 있으며

2003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니다

 

분명 정수일은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언제나 비판을 받겠지만

 

중동 국가 관계에 많은 도움을 준 점

국내에 몇 안되는 이슬람, 아랍 전문가라는 점

여러가지 역사 관련된 서적을 번역하는 점 등

그가 이뤄낸 여러가지 학문적 성과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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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상에서 박멸시킨 최초의 전염병 천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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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삭제시킨 최초의 전염병

인류는 언제나 질병과 싸워왔습니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질병때문일지도 모른다라는 말도 있죠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 아직까지는 질병을 이기고 인류는 살아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 폐렴

일명 코로나19 라고 불리는 바이러스가 유행입니다

 

나갈때 마스크를 하고 손을 잘 씻는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과거에도 비슷한 전염병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말 끔찍했던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이 병은

잠복기간이 7일~17일정도 됩니다

 

처음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고열, 구토, 근육통, 두통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몸에 발진이 생겨 피부가 완전히 망가지게 되고

뇌에 손상을 입거나 실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병은 30%의 치사율을 보이기 때문에

사망자도 참 많았습니다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침에 의해 감염이 되거나

입었던 옷을 입거나 만졌던 물건을 만지는 것으로도 감염이 됐습니다

 

심지어 공기중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죠

 

20세기에만 3억~5억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병은

두창, 마마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바로 천연두입니다

 

기원전 1274년에 있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전쟁인

카데시 전투에서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천연두는 이때쯤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죠

 

천연두는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동아시아쪽으로 전파됐으며

십자군 전쟁으로 아랍쪽에 퍼졌고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아메리카에 퍼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찬란했던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멸망한 원인으로 이야기 되고 있기도 하고

 

조선 숙종의 왕비인 인경왕우, 스페인의 루이스 1세,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염성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한번 유행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었고

치사율이 30%나 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천연두에 걸렸다가 운좋게 회복이 된다고 하더라도

온몸에 상처가 남기 때문에

후유증이 평생동안 가는

그야말로 악마가 내린 저주같은 병이었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주요 사망원인이 천연두였으며

20세기에만 3억~5억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천연두에 의해 멸망할 것만 같았습니다

 

의학기술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 인도나 중국에서는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딱지를 잘게 부순뒤

가루를 건강한 사람의 콧구멍에 넣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천연두에 한번 걸리면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심하게 걸리는 것을 예방하고

지금 약하게 걸리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즉 약한 바이러스를 일부러 집어 넣어

몸이 스스로 면역력을 만들게 하는

예방주사와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을 인두법이라고 부릅니다

 

아랍에서는 천연두 가루를 콧구멍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팔에 작은 상처를 내서 넣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터키의 한 의사는 이것을 책으로 써

영국에 배포했고

이것으로 인두법은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인두법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여주긴 했지만

완벽하진 못했습니다

 

예방접종을 받지 못해 천연두에 의해 죽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고

접종을 받았다 하더라도

애초에 면역력이 약했다면 병이 심해져 죽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영국의 한 의사는 우유를 짤 때 우두라는 병에 걸리면

이후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두는 사람, 소,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을 숙주로하는

천연두와 유전적으로 같지만 많이 약한 병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사는 블러썸이라는 소에게서 우유를 짜다

우두에걸린 사라 넴스를 만나게 됩니다

 

사라 넴스는 우두에 걸린 덕분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사는 우두가 천연두를 예방해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의사는 사라 넴스에게 우두 바이러스를 얻어

자신의 정원사의 아들인 8살짜리 제임스 핍스라는 소년에게 접종했습니다

 

소년은 우두를 앓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치유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집어넣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천연두에 걸릴 경우

성인보다 더 높은 치사율을 보여주긴 하지만

 

다행스럽게 제임스 핍스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이것으로 우두를 미리 접종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의사는 이와 같은 실험을 다른사람에게도 해봤고

그 결과 우두 바이러스보다 더 안전한 백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드디어 인류가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죠

 

이렇게 우두를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을 우두법이라고 합니다

 

백신을 개발해낸 의사의 이름은 에드워드 제너로

인류가 천연두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점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처음 사람들은 제너를 믿지 못했습니다

병을 병으로 이긴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짐승의 병을 사람에게 넣는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너의 방법대로 하면

사람이 소가 되어버린다는 말도 안되는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천연두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제너를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연두에 걸리는 것보다

제너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결국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연두를 예방할 목적으로

백신을 몸에 넣는 인두법과 우두법 같은 방법을

종두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약용과 박제가가 인두법을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하고 있다가

지석영에 의해 우두법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백신은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WHO를 중심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펼쳐나갔습니다

 

천연두는 인간 이외에 다른 동물은 걸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백신을 맞아 면역력이 생긴다면

더이상 숙주로 삼을 개체가 없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WHO는 시스템을 만들어 전염병이 발생하면

1주일 이내에 보고를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천연두 유행이 시작되면

그 지역보다 훨씬 더 범위를 넓게 설정해

조금씩 조금씩 치료를 해나갔습니다

 

천연두가 시작되면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백신을 맞아야 했습니다

과거 천연두 백신을 맞았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식으로 천연두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리려고 했던 것이죠

 

1975년 10월 방글라데시의 라히마 바누가

마지막 천연두 자연감염자였습니다

 

이 아이를 끝으로 천연두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더이상 없었으며

1980년 세계 보건 기구(WHO)는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완전하게 박멸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천연두 박멸 이후 더이상 천연두 예방접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연구 목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아직 가지고 있으며

 

북한 등 몇몇의 국가는 생물학 무기를 목적으로 천연두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천연두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면

인류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예방접종도 하지 않고 있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천연두 백신에 대한 연구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 천연두가 남아있기 때문에

위험이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죠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질병입니다

앞으로 어떤 질병이 유행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연구를 통해 인류는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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