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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멸망해버린 세계 최고의 도시 바그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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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 도시의 멸망

한순간에 멸망해버린 세계 최고의 도시 바그다드

이라크라고 하면 전쟁, IS, 테러처럼
부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죠

하지만 과거에는 이라크가 위치한 중동 지역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750년부터 아바스 왕조가 다스리던 도시인 바그다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다른 도시들과 교류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땅이 비옥했기 때문에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여름에 비교적 시원해 다른 지역에 비해 해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사람이 살기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최고 지도자를 칼리파(칼리프)라고 부르는데
아바스 왕조의 2대 칼리파인 알 만수르는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바그다드는 문화, 예술, 정치,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인구 100만 명을 넘긴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이슬람의 황금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교류를 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들렸고
바그다드는 계속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은 점점 커졌고
중동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앙아시아에는 당나라가 있었는데
이슬람 세력과 당나라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나라는 가장 잘나가는 이슬람 세력을 막을 수 없었고
751년 탈라스 강 근처에서 벌어진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죠

 


이때 당나라 포로에 종이를 만드는 기술자가 있었는데
이슬람은 이들로부터 종이 만드는 기술을 배워
수많은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했고
도서관을 만들어 책을 보관했습니다

아바스 왕조의 7대 칼리파인 알 마문은
지혜의 집이라는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곳 덕분에 바그다드는 학문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집에는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의 책들도 있었는데
이후 이곳에서 보관된 책이 다시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르네상스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그다드 역시 전성기를 영원히 가져가지 못했고
10세기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바스 왕조가 힘을 잃고 있는 것임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슬람의 상징적인 도시인 것은 여전했죠

 


이때 중앙아시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 제국과 대립하던 당나라가 멸망했고 송나라와 금나라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189년 보르지긴 테무진을 중심으로
몽골이라는 나라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골에서는 최고 지도자를 칸이라고 불렀는데
보르지긴 테무진은 1206년 몽골 고원을 통일하고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우주의 군주라는 뜻을 가진 칭호를 받게 되는데
이 칭호가 바로 칭기즈이며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칭기즈 칸입니다



몽골은 칭기즈 칸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나갔습니다

송나라와 금나라는 물론
인접한 나라까지 정복했는데
칭기즈 칸은 전 세계를 통틀어
땅을 가장 많이 넓힌 군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1227년 칭기즈 칸이 죽은 뒤에도 몽골은 세력을 넓혀나갔는데
1257년 칭기즈 칸의 손자인 훌라구가 중동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도착합니다

 


당시 칼리파는 알 무스타심이었는데
훌라구는 알 무스타심에게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알 무스타심에게 있어 몽골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긴 했지만
이제 막 세력을 넓혀가는 하룻강아지 정도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몽골 제국이 탄생한 것은 1206년
약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 국가였기 때문이죠


아바스 왕조가 이슬람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750년
약 500년 정도로 몽골과는 비교도 안될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바그다드 군인들은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았지만
자신은 이슬람 세력의 최고 지도자이기도 했고
일명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같은
든든한 아군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몽골군 따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알 무스타심은 훌라구의 항복 요구를 무시했고
오히려 그들을 도발했습니다



1258년 1월 29일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은 바그다드를 공격하게 됩니다

알 무스타심은 주변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몰락해가는 아바스 왕조였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알 무스타심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당시 바그다드의 병력은 약 5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마저도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병력은 약 12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바그다드는 당시 최고의 도시였지만
최고의 군대를 가진 몽골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이미 숫자상으로 바그다드를 압도했고
병력의 질도 차이가 났습니다

몽골군은 바그다드에 세워진 궁전
수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을 포함해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이때 버려진 책들의 잉크 때문에
티그리스 강이 검게 물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몽골군은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과학자, 예술인, 종교인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도 학살했는데
이때 사망자는 20만에서 80만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그다드군은 몽골군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1258년 2월 10일

항복을 선언합니다

세계의 중심, 이슬람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는
몽골에게 완전히 파괴되어
그 명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 500년 동안 이어진 왕조가
자만심 때문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몽골군은 내친김에 이집트까지 정복하려 했지만
1260년 9월 3일에 열린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이집트에게 패하며
중동 지역을 완전하게 정복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바그다드는 멸망했고 이집트는 막아냈기 때문에
아인 잘르투 전투 이후 이슬람의 주도권은 이집트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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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도 잡아갈 수 없는 곳 삼한시대 가장 절대적인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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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도 잡아갈 수 없는 절대영역

https://youtu.be/UXhRnD4uca8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지방에 형성되어 있던 나라인
마한, 변한, 진한을 합쳐 삼한이라고 합니다

삼한에 대한 기록이 그나마 자세하게 나와있는
중국의 삼국지 위서를 보면
삼한에서는 귀신을 믿는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귀신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유령 같은 것들이 아니라
신성하거나 성스러운 존재인 신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한에서는 이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에 있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제천의식이라고 합니다

삼한은 마한, 변한, 진한 세 개의 나라라고 했지만
사실 그 안에 여러 개의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나라들을 소국이라고 말하는데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변한과 진한은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읍락(邑落)이라고 불렀습니다

읍락 중에서 중심이 되는 곳을 국읍(國邑)이라고 불렀죠

국읍에서는 천신, 그러니까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대표 한 명을 뽑았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고 불렀습니다


천군은 국읍도 아니고 읍락도 아닌 별도의 장소인 별읍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곳을 소도(蘇塗)라고 불렀습니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나무에 북과 방울을 매달아
이곳이 신성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렸다고 합니다

 


고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솟대는
기다란 막대기 위에 새가 앉아있는 형태의 종교 건축물인데
소도라는 이름이 솟대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솟대는 솟다와 막대가 합쳐진 말로
하늘 높이 솟은 막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소도는 높이 솟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도는 한자어라는 말도 있긴 한데
한자 그대로를 풀어보면 소생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도는 제천의식을 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소국에 하나씩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국가 간 경계를 표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삼한에서는 5월에 씨를 뿌릴 때, 10월에 수확을 한 뒤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는 농경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제사를 지낸 장소가 소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북과 방울이 장소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큰 나무가 농경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삼한에서 소도는 굉장히 신성한 장소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떠한 소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쳐오면
아무리 높은 사람이 출동한다고 해도
절대 잡아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소도가 소생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 즉 천군이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물론 이런 덕분에 크고 작은 범죄가 많이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과거 고조선은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가 한 명이었던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삼한에는 소도가 있었기 때문에
삼한부터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제정분리 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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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는 왜 모래 마녀라고 불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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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래 마녀라고 할까

빵과 빵 사이에 고기, 햄, 치즈
여러 가지 채소들을 넣어 만들어 먹는 음식을
우리는 샌드위치라고 합니다

샌드위치는 영어 이름인데
샌드와 위치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sand는 모래고 wich(witch)는 마녀입니다

즉 샌드위치는 모래 마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도대체 샌드위치가 마녀랑 무슨 관계길래
샌드위치는 모래 마녀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요




1718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존 몬태규는
집안 대대로 해군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온
뼈대 있는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1722년 그가 4살일 때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10살인 1729년 할아버지로부터 작위를 이르게 계승 받았고
여러 가지 공부를 한 뒤 1739년부터 상원의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몬태규 가문에 주어진 작위의 이름은 샌드위치 백작으로
1대 샌드위치 백작이었던 에드워드 몬태규에 이어
존 몬태규는 4대 샌드위치 백작이었습니다

현재 하와이라고 불리고 있는 섬은
과거 샌드위치 제도라고 불렸는데

1778년 탐험가 제임스 쿡이 처음 발겼을 했을 때
4대 샌드위치 백작인 존 몬태규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존 몬태규는 1748년 제1해군경이 되기도 했는데
여기서 제1해군경은 영국 해군의 총지휘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꽤 유능한 인재였던 것 같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으니
도박을 아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한번 도박을 시작하면 식사할 시간도 아까워
도박을 하는 곳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이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빵과 빵 사이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음식을 주로 주문했다고 합니다


함께 도박을 했던 사람들은
샌드위치 백작이 먹는 이 음식에 관심을 보였고
같은 음식을 주문했는데
이때 샌드위치와 같은 걸로 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이 음식을 샌드위치라고 부르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샌드위치가 모래마녀라고 불린 것은 마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위 이름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거짓이라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당시 영국에는 휘그당과 토리당이 있었는데
샌드위치 백작은 휘그당 소속으로
토리당과는 대적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리당이 샌드위치 백작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이죠

 


샌드위치 백작은 사실 도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의 하인이 책상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만들어진 음식이 빵과 빵 사이에 고기와 채소를 넣은 음식이었는데
이것이 전해져 샌드위치가 되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물론 샌드위치라는 음식 자체는 샌드위치 백작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샌드위치에 대한 어원을 정확하게 알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샌드위치 백작이라는 사람이 이름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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