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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조선의 문관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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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살린 고양이

조선의 10대 국왕이었던 연산군은
재위 후반부터 나랏일은 하지 않고
각종 기행을 저지른 조선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여자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1504년 연산군은 전국에 있는 미녀들을 궁으로 데려오기 위해
관리직을 뽑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파견된 벼슬아치들을 채홍사, 채청사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데려온 미녀들 중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는데

돈이나 물건을 아끼지 않고 마구 쓸 때 사용하는 흥청망청에서 흥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연산군이 흥청을 뽑을 땐 신분의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흥청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은 첩으로 삼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급격한 신분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일부의 사람들을 이것을 이용해
갑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이 아끼던 첩중 유명한 인물은
장녹수와 전전비 그리고 백견이라 불리는 김숙화입니다

이중 김숙화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관노였던 김의라는 사람의 딸로 태어나 노비로 살아갈뻔했지만
흥청이 되어 후궁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인물입니다

 


연산군은 김숙화를 굉장히 아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금음동이라는 종이 김숙화를 꾸짖자
금음동의 주인인 이기라는 사람의 부모, 형제, 처자, 장인까지 불러
옥에 가두는 일도 있었습니다

노비에서 한순간에 왕의 장인어른이 된
김숙화의 아버지인 김의는 이런 점을 이용해
나주에서 엄청난 행패를 부리고 다녔습니다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고을을 왔다 갔다 하며
흔히 사또라고 불리는 원님들에게 접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김의는 성씨 김자에(金) 의지할 의자(依)를 사용했는데
사람들은 김의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의자에서 사람 인자(人)를 빼 윗도리(衣)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김의는 우부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윗도리에서 변형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전라도에서 우부리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부리의 행패는 점점 더 포악해져갔죠

그러던 중 1505년 박상이라는 사람이
전라도사에 부임하게 됩니다

전라도사는 도지사를 보좌하는 부지사급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박상은 행동과 인품에 흠이 없어
하늘이 내린 완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우부리의 행패를 막기 위해 스스로 전라도사에 지원했습니다

1506년 8월 박상은 우부리를 불러 심문했습니다
하지만 우부리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거나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상은 우부리를 곤장으로 매우 쳤습니다
치고 치고 또 쳤습니다
우부리는 맞고 맞고 또 맞았습니다


우부리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거친 매질을 견딜 수 없었고
결국 곤장을 맞다 사망했습니다

형벌 중 하나로 때려죽이는 것을 장살이라고 합니다
물론 박상은 우부리를 죽일 마음은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우부리가 맞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 사건을 우부리 장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박상이 때려죽인 죄인은 하필이면 왕의 장인어른이었습니다

그는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해
직접 보고를 하러 한양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연산군은 금부도사를 박상에게 보냈죠

금부도사는 주로 사약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의금부라는 사법기구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즉 연산군은 자신의 장인을 죽인 전라도사를 죽이기 위해
박상에게 사약을 내렸던 것이죠

 


박상이 아직 전라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금부도사는 전라도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고양이 한 마리가 박상 곁으로 다가오더니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샛길로 들어가 버렸는데
박상은 이것이 너무 신기해 고양이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연산군이 보낸 금부도사는
박상이 지나던 길을 지나가게 됩니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덕분에 금부도사와 마주치지 않았고
박상은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1506년 9월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과
그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은 조선의 11대 국왕이 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을 중종반정이라고 합니다

박상이 한양에 올라오니 중종반정으로 국왕이 바뀌어 있었고
이들은 연산군과 김숙화, 우부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박상이 한 일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약을 먹고 죽을 운명이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박상은
1530년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상과 우부리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이런 내용은
박상이 쓰고 전라도관찰사 최규서가 간행한 눌재집에 나와있다고 합니다

박상의 경우를 생각해 길을 가다 갑자기 고양이가 다가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절대 무시하지 말고 고양이를 따라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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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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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마피아

 

 

영양분이 풍부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리는 우유

물론 이것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완전식품이라고 부르는 게 맞느냐 하는 말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유를 먹어왔고
치즈, 버터, 생크림 등
여러 가지 제품으로 변형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음식이라고는
확신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유를 유통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착유하는 곳의 위생도 신경 써야 하고
상온에선 쉽게 상해버리기 때문에
운송할 때 보관 방법도 신경 써야 합니다

하지만 위생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과거에는
우유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유통기한이 따로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유를 먹다 탈이 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었습니다
게다가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은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죠



특히 미국에서는 농장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우유병이라고 하는 질병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우유는 상할 경우 맛과 냄새가 변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 당시 우유를 판매하던 사람들은
이것을 속이기 위해 우유에 밀가루나 계란을 넣었다고 합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조사에 들어갔는데
마이클 투오메이라는 정치인은 낙농업자의 편을 들어주며(1858년)
어린이들한테는 오히려 상한 우유가 좋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우유 시장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유 사업에 뛰어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189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알 카포네라는 이름을 가진
시카고의 마피아 조직 두목이었죠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대는 1920년대부터였는데
이때 미국은 금주법이 시행되던 때였습니다

금주법은 미국 내에서 술을 만들거나 판매하거나
수입하거나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으로

술을 퍼마시는 것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정을 신경쓰지 않는 남편들이 늘어나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금주법이 시행된 직후 사람들은 술을 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술을 찾았습니다

미국 내에서 술을 만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을 밀주라고 합니다


밀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불법을 행하는 마피아 조직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는데
이때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사람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이
바로 알 카포네입니다

술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선 관리자가 필요했는데
금주법으로 인해 걷어지는 세금의 양이 줄어들어
충분한 사람을 뽑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알 카포네는 경찰, 정치 쪽 사람들을 매수해
세력을 더 키워갔죠

 


그는 밀주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살인으로 인한 체포는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 카포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쨌거나 미국의 금주법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법으로 금지하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술을 통제하기는커녕 마피아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 되었죠

1930년에 들어서 금주법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폐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금주법이 폐지되면 사람들은 굳이 밀주를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알 카포네는 금주법이 폐지되는 것에 대비해
다른 사업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우유입니다

일부의 성인들만 마시는 술과 달리
우유는 남녀노소 누구나 마시기 때문에
술을 파는 것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장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피아답게 총을 들이밀며 불법적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우유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이 당시 우유 배달은 수레나 마차를 이용했는데
이것 때문에 상온에 오래 노출돼 쉽게 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배달도 제때 오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알 카포네는 밀주를 유통할 때 사용하던 냉장 수송차를 이용해
신선한 우유를 빠르게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총으로 무장한 조직원들을 보내
우유의 품질을 속일 수 없게 만들었죠

 

 


또 사람들이 자신이 판매하는 우유만 사 먹을 수 있도록
한 가지 법안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통기한이었습니다

당시 우유에는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한 우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카포네는 힘 있는 정치인을 로비해
유통기한이 표시되지 않은 우유는 판매할 수 없는 법안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카포네의 우유는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법이 시행될 경우
한 발짝 앞서 나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이때부터 우유에 유통기한이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알 카포네가 돈을 벌기 위해
우유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했던 이런 행동은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신선한 우유
믿을 수 있는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만들어줬고
우유 시장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알 카포네가 유통기한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아직까지 논란거리로 남아있긴 합니다


알 카포네의 손녀인 디어드리 카포네는
할아버지가 우유 사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병(bottles)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통기한에 관련된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알 카포네 덕분에 좀 더 신선하고 안전한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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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사? 재평가 시급한 콜럼버스의 진실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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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항해사 콜럼버스의 진실

 

 

과거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되지 않았을 땐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 끝부분으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고
계속 가면 결국 떨어질 것이라 믿었죠

하지만 항해사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고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계속 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비웃었지만
콜럼버스는 믿음을 가지고 항해를 했고
그 결과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콜럼버스는 위대한 항해사이자 개척자
한 명의 위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죠

그런데 사실 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보다도 훨씬 더 먼 옛날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고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기까지 했습니다

콜럼버스는 1451년에 태어났는데 이 시대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죠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알고 있던 이유는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 때문입니다

그는 1828년에 콜럼버스의 삶과 항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콜럼버스만이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고
다른 유럽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님에도 말이죠

 


책이 유명해지면서 콜럼버스의 업적이 과장되기 시작했고
위인전이 등장하고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콜럼버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워싱턴 어빙의 이 책은
미국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쓰인 거짓된 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비웃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서쪽으로 항해할 경우
아시아까지 거리가 20,000km는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한 것은 1492년인데
이때 기술력으로는 식량과 물을 보관하지 못해
20,000km를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일본까지 거리가 4,40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충분히 항해할 수 있을 것이라 했기 때문이죠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에게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가는 항해를 시작했는데
항해의 목적 자체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시아에 있는 보물을 약탈하고
그곳을 식민지화하기 위함이었죠


실제로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할 경우
도착한 땅을 관리할 수 있는 총독 지위를 줄 것
지위가 자손에게 세습될 것
땅에서 얻는 수입의 10%를 줄 것
무역을 할 경우 이익의 8%를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콜럼버스의 항해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였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아메리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인도에 도착한 것이 되었습니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전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아메리카 원주민, 네이티브 아메리칸
혹은 인디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인디언은 인도 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이들을 인디오(indio)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돼 인도 사람이 아님에도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어쨌거나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스페인으로 돌아가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며
1493년 2차 항해, 1498년 3차 항해, 1502년 4차 항해를 나갔습니다


그는 항해를 하는 동안 수많은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린아이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금을 캐오라고 시켰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구타하고 고문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신체를 잘랐고
원주민들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노예가 된 원주민 중 일부는 스페인으로 팔려갔으며
끔찍한 이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그의 항해일지에 나와있으며
항해에 참여했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라스 카사스의 책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는 동안
원주민들은 계속 학살당했습니다

 


그가 식민지배했던 곳은 히스파니올라 섬인데
이곳의 인구는 30만 명이었지만
콜럼버스의 학살 이후 500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항해사 콜럼버스는
사실 잔혹한 학살자였던 것입니다


1504년 자신의 항해를 지원해 주던 이사벨 여왕이 죽자
콜럼버스의 지위도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1506년 콜럼버스는 질병에 의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망하는 그날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은
인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으니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원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03년 이탈리아의 아메리코 베스푸치는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서쪽으로 항해를 해서
아메리카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콜럼버스와 다르게 이곳을 신대륙으로 생각했고
이 사실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 신대륙은 아메리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해서
누구도 달걀을 세우지 못할 때
끝을 조금 부숴 달걀을 세운 일화를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도 사실은 콜럼버스의 일화가 아니라
1377년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일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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