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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프라이 vs 벨지언 프라이 감자튀김은 프랑스 음식일까 벨기에 음식일까

- 감자튀김의 역사 -



감자튀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가끔 햄버거 가게를 지나가다 보면 햄버거가 끌리지 않더라도

감자튀김의 냄새에 끌려 감자튀김만 따로 사먹는 경우도 있을정도로

정말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인데요


감자튀김을 영어로 하면 Frenchs(프렌치 프라이)입니다




여기서 French란 프랑스의, 프랑스인의 라는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튀기다라는 뜻을 가진 Fry를 변형시킨 Fries가 합쳐저 직역하면 프랑스의 튀김요리가 됩니다

Fries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역시 프렌치 프라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감자튀김은 프렌치 프라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벨기에의 입장은 다릅니다


감자튀김은 프랑스 음식이 아니라 벨기에의 음식이라는 것이죠


사실 이것에 대해선 어딘가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로가 추측만 하고 있어서 아직까지 프랑스 음식이다 벨기에 음식이다 라는 것이 결정되지 않았죠


확실한 증거 자료가 있음에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과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감자튀김이 어느나라 음식인지 알기 위해선 최초에 감자튀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습한 날씨 때문에 밀이 재배되지 않던 벨기에의 한 지역

이곳의 주민들은 주로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튀겨 먹었습니다


하지만 1680년 이상 기후로 인해 강이 얼어버렸고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감자를 재배해 물고기 모양으로 썰어 튀겨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감자튀김의 처음이라는 가설이 존재합니다


이 당시 프랑스는 어땠을까요?



이 당시 프랑스도 감자를 재배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감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재배한 감자를 돼지의 사료로 이용할 뿐이었죠


다음은 여러가지 가설 중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가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때는 세계 제 2차대전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에 주둔하던 영국군과 미국군은 처음으로 감자튀김을 접하게 됐습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사용했는데

왈로니아 지방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군과 영국군은 감자튀김이 프랑스 음식인 것으로 착각했고

이것을 French Fried Potatoes(프렌치 프라이 포테이토)라고 부르다가

오늘날에 와서 French Fries(프렌치 프라이)로 바뀌었다는 가설입니다



사실 이것은 감자튀김의 시초와 상관 없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감자튀김은 프렌치 프라이라고 불렸는데 미국에서 아주 잠깐 Freedom Fries(프리덤 프라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911테러 당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을 프랑스가 반대했죠


그래서 미국과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가 되었는데

이때 일부 패스트푸드 점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바꿔서 팔곤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의회의 구내식당도 감자튀김의 이름을 프리덤 프라이로 바꿨습니다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놀림거리가 됐고

당시 이름을 바꿨던 의원은 내 정치 평생 최악의 오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대사관의 반응은 조금 황당합니다


감자튀김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안하겠는데

프렌치 프라이는 벨기에에서 만들었답니다 라고 말해서

국민들에게 매국노 소리를 듣기도 했죠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벨기에와 프랑스는 프렌치 프라이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사관에서 이런 소리를 했다니..


우리나라의 경우로 생각해보면 한국 대사관에서 독도는 일본 땅입니다 라고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겠죠?



감자튀김은 햄버거와 같이 팔리고 있고

기름과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크푸드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건강을 생각하는 분들에겐 기피대상 1호 음식이죠


하지만 벨기에에선 Belgian Fries(벨지언 프라이)라고 말하면서

한끼 식사로 판매하기도 하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감자튀김을 케찹과 함께 먹지만

벨기에를 포함한 유럽에선 마요네즈에 찍어먹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감자를 선물했고 악마는 인간에게 감자를 튀기는 방법을 선물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벨기에 음식인지 프랑스 음식인지는 두 나라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맛있게 먹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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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의 기원 비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우리 인생에서 비누가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아니 그렇다면 그 이전에 비누가 없었던 때는 어땠을까요?

기름을 어떻게 지워냈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아서 비누가 없다면

기름을 지워내기 정말 힘든데말이죠


사실 비누의 탄생에 관련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여러가지 썰이 존재할 뿐이죠


최초에 비누는 지금처럼 얼굴이나 몸을 씻는 용도가 아니라 섬유 산업에서 울 세척을 위해 사용됐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것을 이용해 줄기에서 얻어지는 식물성, 동물성 기름을 이용해 비누(당시에는 비누가 아니었죠)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누를 사용하던 중 염증, 피부 질환뿐 아니라 세척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알아낸 뒤

알카리염과 혼합해 최초의 비누를 만들었다는 썰이 존재합니다



로마의 전설에 의하면 고대 동물 희생 의식이 있었던 사포산(sapo)의 이름에서

지금의 비누(soap)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동물 희생 의식이 끝나고 비가 내리면 동물의 지방과 제단 밑에 모여진 타다남은 재가 강의 둑까지 모이게 됩니다

강에서 세탁을 하던 여인들은 비가 온 뒤 특정 위치에서 빨래를 하면

이상하게 빨래가 더 깨끗해지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초 비누의 등장이죠

물론 물에 섞여 있기에 형태나 모양은 없지만 어쨌든 이때 인류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비누에 대한 언급이 두번정도 되는데

청정제를 지칭하는 히브리어의 Borith가 세정비누로 번역됐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비누는 7세기에 나블루스 비누와 바스라비누로 발전 됏고

이때부터 액체, 고체, 면도용 비누, 향수와 색상을 넣은 다양한 비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대중들에게 개인의 위생과 청결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커졌고

지금의 비누 모양을 한 비누를 대량으로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1916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합성 세제를 만드는 화학식을 완성했고

2차 세계대전 중 여러가지 합성 화장품 원료가 개발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품질의 변화가 없고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비누까지 점점 발전해 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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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과 저그의 아버지 H.R. 기거

- 에이리언의 탄생 -



괴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이빨이 날카롭고 기괴하게 생겼으며, 당장이라도 누구를 죽일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있겠죠?


보통 괴물이 아니라 외계 괴물이라면 또 어떨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에이리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외계인하면 떠올리는 모습이 비슷하듯 괴물하면 떠올리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그 괴물의 모습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선 시각디자이너 H.R. Giger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각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기거는 어린시절부터 악몽을 자주 꿨습니다

늘 검정색 옷만 입었고 밝은 곳보다 어두운 지하실을 좋아했습니다


검정색 옷만 입었다는 것이 뭔가 잡스와도 매치가 되는데

어떤 분야에서 천재가 되기 위해선 검정색 옷만 입어야 할까요?

그러고보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도 검정색 옷을 입고 있네요

오늘부터 저도 천재가 되겠습니다


뭐 어쨌든 약사였던 아버지의 영향때문이었는지

장난감보다 두개골이나 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거는 자신이 악몽에서 본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악몽을 그리다보니 정상적인 그림보다

기괴하고 이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특히나 어린아이의 머리속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그런 그림들을 그려냈죠


기거의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기거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군댔지만

기거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아이가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하며

정신병원으로 보내겠지만 기거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기거를 정신병원이 아닌 취리히의 응용미술학교로 보냈죠


기거는 그곳에서 계속 악몽에서 본 기이한 장면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기거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 한명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빼고는 말이죠



달리는 기거에게 조도로프스키라는 영화 감독을 소개시켜줍니다

당시 조도로프스키는 듄이라는 영화를 제작중이었는데

기거에게 영화 듄의 디자인을 맡겼죠


뭐 결론만 말하자면 듄은 결국 영화화 되지는 못했습니다



영화 듄을 함께 작업했던 댄 오배넌이 리들리 스콧에게

에이리언의 디자인으로 기거의 네크로노미콘 4를 추천했습니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의 영화 감독이죠



이 그림이 바로 기거가 그린 네크로노미콘4입니다

이 그림 덕분에 기거는 영화 에이리언의 디자이너가 됩니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에이리언이죠



그런데 에이리언의 모습을 보면 어떤 종족이 떠 떠오르지 않나요?

바로 스타크래프트의 저그인데요


물론 저그는 기거가 직접 디자인을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거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에이리언과 저그의 컨셉을 보면 제법 비슷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퀸이 테란을 숙주로 삼아 브루들링을 탄생시킨다던지

알에서 태어나는 저글링들 히드라의 생김새 등등!

 


기거의 그림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토 준지 역시

기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죠


기거는 2014년 5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 기거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괴물이라는 새로운 종족의 출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기거가 악몽을 꾸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겠지만

기거는 그것을 잘 참았고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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