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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이 음식을 씻어 먹는 충격적인 이유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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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씻어 먹는 걸까

 

판다처럼 눈가에 검은 부분이 있고
꼬리에 있는 줄무늬가 특징인 라쿤
너구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구분이 잘되지 않지만
너구리는 갯과 라쿤은 아메리카너구리과로
엄연히 다른 동물입니다

특히 라쿤은 음식을 씻어먹는 녀석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심지어 솜사탕까지 씻어버려
당황한 채 사라진 솜사탕을 찾는 라쿤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라쿤은 쥐나 물고기, 벌레도 먹으며
도토리나 호두 같은 견과류도 좋아하고
과일도 먹는 잡식성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입에 넣기 전
씻어먹는 독특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라쿤은 Procyon lotor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lotor는 세탁기를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과거에는 라쿤이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씻어먹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광견병이나 회충을 옮기는 것이 알려진 뒤로
청결과는 거리가 있는 동물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깨끗한 음식을 줘도 더러운 물에 씻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마을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기도 합니다

이후엔 충분한 타액이 나오지 않아
물을 묻혀 먹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지만
라쿤이 물과 가까이 있지 않을 땐
굳이 씻어먹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되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라쿤은 4족 보행을 하지만
앞발은 손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정교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사람만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5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어
다른 동물에 비해 물건을 잡고 움직이는데 능숙합니다

특히 라쿤의 손(앞발)에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5배나 많은 감각 수용체가 있어
지금 들고 있는 것의 무게, 크기, 질감, 온도 같은 것들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라쿤은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손의 감각에 의지해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눈으로 보기보다 손으로 본다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1986년 라쿤을 연구해 본 결과
라쿤의 손이 젖으면 감각 수용체의 민감도가 올라가
물건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 극대화됐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본 라쿤의 이런 행동은 음식을 씻는 것이 아니라
지금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행위였던 것이죠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으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물에 넣어 최대한 신중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빛이 필요한 것처럼
라쿤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물에 젖지 않아도 라쿤의 손은 예민하기 때문에
지금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가까이 있지 않으면
굳이 물에 넣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라쿤은 지능이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처음엔 솜사탕에 대해 잘 몰라 물에 넣었지만
이후엔 물에 넣으면 사라진다는 것을 파악하고
주는 데로 그냥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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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친일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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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먹여살린 친일파의 아들

조선 침략을 계획하고 있던 일본은
1895년 10월 8일 경복궁에 침입해
조선 침략에 방해가 되는 인물인 명성황후를 살해합니다

이 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부르죠

이때 경복궁에 침입한 집단에는 조선군 훈련대도 있었는데
조선군 훈련대는 일본에 의해 창설된 부대로
훈련대대장은 조선 사람이었지만
일본에 충성하는 친일파였습니다

당시 훈련대대장은 우범선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우범선 역시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조선인 중 하나였습니다

을미사변 이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1903년 고영근이라는 사람에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그는 일본인 아내와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아들의 이름은 우장춘이었습니다




우범선이 살해당할 때 우장춘은 고작 5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사망한 뒤부터 집안 형편이 급격하게 나빠져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우장춘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1916년 도쿄의 한 전문대학에 들어가 농업을 전공하고
1919년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 취직해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다른 종끼리 교배시키는 것을 교잡이라고 하는데
우장춘은 1935년 배추와 양배추를 교잡해 유채를 만들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추와 흑겨자를 교잡해 갓을 만들어내고
양배추와 흑겨자를 교잡해 에티오피아 겨자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우장춘의 삼각형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다른 종끼리 교배를 시키는 경우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장춘은 이것을 성공해 내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시키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합니다


이것으로 우장춘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현재까지도 외국 교과서에 우장춘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장춘은 도쿄제국 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우장춘 이전에 조선인으로 농학박사를 취득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업적을 달성했지만 우장춘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본인이면서 조선인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우리나라는 여전히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45년 드디어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한 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분단의 슬픔을 뒤로한 채 어쨌든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습니다
자원이 필요했고 인재가 필요한 시기였죠

그러던 중 우장춘이라는 뛰어난 인재가 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집니다

그래서 1947년 우장춘박사 귀국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우장춘을 우리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장춘은 일본에 살며 비록 업적에 비해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한국어도 못하는 그가 굳이 한국으로 올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우장춘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며
100만 엔의 생활비를 지급했는데
현재 가치로 따지면 100만 엔은 10억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우장춘은 한국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의 기본이 되는 씨앗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부분을 일본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 이후 우리나라의 농업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우장춘은 우리나라로 들어와
지금까지는 일본을 위해 일했지만
이제부터는 한국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며
생활비로 받은 100만 엔을 연구에 필요한 책과
좋은 씨앗을 사는데 전부 써버립니다


일본에 있을 땐 학문적 연구를 중요시했지만
우리나라에 와서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작물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우장춘은 한국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어를 못하기도 하고 일본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친일파인 우범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생해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흘러갔습니다

1953년에는 일본에 계신 그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뵙기 위해 일본에 가려고 했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우장춘이 일본에 가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그의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우장춘은 한국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는 연구소 근처에 우물을 하나 팠는데
이것을 어머니의 자애로운 젖이라는 뜻을 담아
자유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우장춘은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품질의 씨앗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결국 성과를 냈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당도가 높은 금싸라기 참외
여름철 평지에서도 자랄 수 있는 무를 만들어냈고

강원도에서 감자 산업, 제주도에서 감귤 산업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고추, 오이, 양파, 토마토 등 수많은 작물의 우수한 품종이
한국에서도 잘 자랄 수 있게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배추하면 통통하고 뜯어도 뜯어도 잎이 계속 나오는
이런 모양의 채소를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길쭉하고 잎이 적은
이런 모양의 배추가 자랐습니다

우장춘은 이 배추를 개량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양의 배추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식탁에 빠질 수 없는 김치는
우장춘의 업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우장춘은 우리나라가 식량난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을 줬으며
우리나라 농업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장춘 하면 씨 없는 수박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은 일본의 키하라 히토시이며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을 소개하며
농업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입니다

 


이때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본 사람들이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이것이 잘못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950년 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부터 1959년까지
우장춘은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것을 인정해 정부에서는 1959년 8월 7일
우장춘에게 훈장(문화포장)을 수여했습니다

훈장을 받은 우장춘은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해 줬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훈장은 조금 늦은 훈장이었습니다

1959년 8월 10일 우장춘은 십이지장에 생긴 문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우장춘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치러진 첫 번째 사회장이었다고 합니다

이승만은 우장춘이 살아있을 때 농림부 장관직을 제안했지만
이것을 거절할 정도로 우장춘은 권력보다
연구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장춘은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의 자리에 있었지만
항상 작업복과 고무신만 신고 다녀
사람들은 그를 고무신 박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장춘은 우리나라에 왔을 때 부산에 살았는데
부산에는 우장춘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우장춘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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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를 가진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뇌를 채워줄 은덩어리 지식들 은근한 잡다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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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우리는 눈을 두 개 가지고 있는 덕분에
보이는 물건이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입체시라고 하죠

이렇게 물건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 해도
한쪽 눈의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사시라고 하죠

만약 눈동자가 안쪽으로 움직인다면 내사시
바깥쪽으로 움직인다면 외사시
위로 움직인다면 상사시
아래로 움직인다면 하사시라고 합니다

 


태어나면서 사시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성장하면서 사시가 생기기도 하며
심지어 성인이 되어도 사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4%가 사시를 가지고 있는데
양쪽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시가 있는 사람들은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세상이 흐리게 보이고 물건이 두개로 보이는 복시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 개의 눈에서 들어온 정보는 뇌로 전달되는데
만약 사시가 있어 각각 다른 정보가 뇌로 전달되면
하나의 정보를 무시하는 억제가 발생합니다

그럼 무시된 쪽의 눈의 시력이 떨어지는 약시가 발생하게 되죠

게다가 한쪽 시야가 무시되기 때문에
입체시가 나타나지 않아
물건의 멀고 가까움을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시가 있을 경우 빠르게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시가 발생하는 이유는
뇌신경이 마비되어 눈의 이동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거나
눈을 움직이는 근육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사시를 가진 사람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부분은 원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다행히 사시는 치료가 가능합니다
사시가 있는 쪽 눈의 시야가 무시돼 약시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 사시가 없는 쪽 눈을 가려
사시가 있는 쪽 눈을 강제로 사용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눈동자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프리즘 렌즈로 만들어진 안경을 통해 교정합니다

사시가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피곤하거나 멍 때릴 때 가끔씩 나타나는 것을 간헐적 사시라고 하는데
간헐적 사시가 있는 경우 가림 치료나 안경으로 치료가 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방법은 사시의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정이 됐다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은 눈을 움직이는 근육의 힘을 조정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눈동자가 안쪽으로 움직이는 내사시의 경우
안으로 잡아당기는 근육을 약하게 하고
밖으로 잡아당기는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
눈동자가 똑바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수술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덜 교정돼 사시가 남아있거나
과하게 교정돼 사시가 반대로 생기는 경우도 있어
몇 번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추가로 눈동자를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그냥 멍 때리고 있거나 한쪽 눈을 가릴 때 사시 증상이 나타난다면
잠복사시 혹은 사위라고 합니다

사위는 사시에 비해 심각한 증상은 아니기 때문에
가림 치료나 안경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시는 어렸을 때 치료해야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상태를 잘 살펴보고
뭔가 이상함이 느껴지면 병원에 가 진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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